[수필의 향기] 앵두나무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6월 03일(월) 00:00
앵두나무가 있었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꽃 피고 열매 맺을 때면 저절로 눈길이 갔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 나무 밑을 서성거렸다. 꽃이 지고 그 자리에 흉터처럼 작은 흔적이 남고 그리고 소리 없이 여물어가는 것을 숨죽이며 바라보았다. 도무지 언제 크고 언제 붉어지는지 아무리 쳐다봐도 알 수 없었지만,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보고 또 보곤 하였다.

장꽝 옆 언덕바지 낮은 울타리, 앵두는 빛깔부터가 달랐다. 초록과 선홍의 대비가 쏟아지는 햇빛 아래서건 내리치는 빗속에서건 그렇게 산뜻하고 예뻐 보일 수가 없었다. 날로 창창해진 잎사귀들과 날로 붉어진 열매들이 서로 쟁쟁하게 맞서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좋았지만 입안에 군침이 도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과육이 많지도 않고 씨앗도 커서 실상 먹잘 것은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따먹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아찔한 무엇이 앵두에게는 있었다. 붉고 탱탱하고 빛나는 그 열매는 찔레나 삐비처럼 슴슴하거나 밍밍하지 않았다. 입안의 혀뿐 아니라 눈과 코, 아니 온몸이 곤두서는 맛이라고 할까. 맛보다 먼저 그 빛깔에 취해버렸다고 할까.

나무는 크지 않았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누가 심어놓은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은 어느 날 문득 발견된 것이었다. 장꽝 옆 언덕바지가 눈에 띄게 환해지면서 스스로를 밝힌 결과였다. 주위는 온통 초록투성이인데 가지마다 총총 선홍의 열매를 매달 때, 그럴 때면 유독 존재감이 돋보였다. 그때부터는 숫제 ‘내 나무’가 되었다. 그러나 침 발라 찜해 놓기는 했어도 전혀 안심할 상황은 아니었다.

윗집에 창수라는 아이가 살았다. 그 애는 나보다 어리고 성격도 순했지만 그걸 가만히 두고 볼 리는 없었다. 녀석도 분명히 군침을 흘리고 있을 게 뻔했다. 문제는 앵두나무가 하필 창수네와 우리 집 사이에 있다는 것. 우리 집에서 보면 우리 것처럼 보이고, 창수네 집에서 보면 역시 창수네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었다. 딱히 누구네 것이라 단정하기 어려운 애매한 나무.

그런 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다. 우리 집과 아랫집 사이, 둥치가 제법 큰 돌배나무였다. 봄이면 하얗고 뽀얀 꽃을 피워 앞마당이 환했다. 꽃이 지고 난 후면 동글동글한 열매들이 조랑조랑 매달렸다. 심심하고 배고픈 우리는 아직 맛도 들지 않은 풋것들에도 곧잘 눈독을 들였다. 앵두처럼 예쁘거나 도드라진 매력은 없어도 그냥 바라만 볼 리는 없었다. 한입 베어 물었다가 이내 뱉어버리기 일쑤였지만 돌배라고 예외는 없었다.

이번엔 할아버지가 문제였다. 아랫집 할아버지는 부러 나무 밑을 왔다 갔다 하는 듯했다. 에헴, 에헴! 헛기침을 뱉기도 하고 지팡이를 들어 바닥을 툭툭 치기도 했다. 함부로 따먹지 말라는 신호인지 얼씬도 말라는 경고인지 아리송했지만 배나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기침 가래 심한 할아버지에게 돌배는 귀중한 약재가 된다는 걸 들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겐 여간 야속하지가 않았다. 좁쌀영감이라는 별명답게 할아버지 손에는 늘 지팡이가 들려 있었으며 여차하면 마구 휘두를지도 몰랐다. 우리는 마주칠 때마다 흘금흘금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흘겨보는 할아버지와 달아나는 우리들 사이에 돌배나무만 애매하게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나무는 툭, 투둑 제 열매를 떨어뜨릴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앵두나무도 돌배나무도 ‘우리’ 나무였다.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다가도 해마다 한 번은 제 존재를 드러내는 ‘우리 사이’의 나무. 이웃과 이웃 사이 긴장을 유발하는 나무이기도 했고 은근히 탐욕을 일으키는 나무이기도 했다. 꽃피우고 열매 맺을 때면 보란 듯이 우리의 눈길을 끄는 유혹의 나무이기도 했다.

그 나무가 아직 거기 있을지 모르겠다. 여전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지도 모르겠다. 따먹을 사람도 욕심내는 사람도 없이 평화가 찾아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쯤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말아, 흘러가는 구름이나 바라보고 나붓대는 바람이나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 혼자 익고 저 혼자 떨어지며 햇살이나 부둥켜안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기억 속에서는 언제나 살아 있는 나무, 우리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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