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나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05월 26일(일) 22:00
“넌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왜 그래?”

“내가 어떤 사람인데…”

얼마 전이다. 그는 나를 매우 잘 아는 척했다. 사실 난 그냥 지인 정도로 여겼는데, 서운하다는 거다.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속았단다.

아차 했다. 여행을 가자는 걸 마다했더니 돌아온 말이다. 내가 너무 속내를 드러낸 모양이다. 몇 번 친절했더니 그것으로 나를 규정해버린 모양이다. 악당으로 치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여하간 그와 나는 친소 관계의 농도는 물론 바라보는 각도가 서로 달랐다.

회사에는 같은 공간이나 벽 사이로 여러 동료가 근무한다. 동 시간에 출퇴근하고 함께 식사하니 협업 관계를 뛰어넘어 가족 못지않은 사이임이 분명하다. 애경사나 친목 행사로 허름해진 끈을 중간중간 조여 매기도 한다.

그런데 어딘가 틈이 없지 않다. 각자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새처럼 우리 역시 이념이나 종교, 성별, 세대 차이, 생활방식 등 일정한 간격을 두고 살아간다.

간혹, 그 수많은 차이를 무시하고 몇 가지 공통분모를 가지고 나를 안다고 할 때, 나는 무척 당혹스럽다.

그들은 인적 네트워크에 애면글면 집착하는 이유가 그 때문인 모양이다.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 말로 친근감을 표시해서 거리를 좁히려고조차 한다. 지연 학연 혈연은 큰 줄기이고, 심지어 친구의 친구라는 구석까지 연결하여 아는 것을 찾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 정보들이 웬만큼 수집되면 결론을 내린다. 나는 그를 잘 아는 사람이라고,

아는 것은 힘이다. 거기에 사람을 아는 것은 더 큰 힘이다. 아주 사소한 이웃 간의 다툼도 아는 이가 중재하면 쉽사리 해결되고, 읍내의 복잡한 문제도 아는 이를 통하면 곧잘 해결된다. 사업이 정치가 그랬고 법 위에 네트워크가 그랬다. 특히 권력을 가진 사람을 아는 것은 더 큰 힘이다.

그들이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관계를 맺어 고작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는 일일 뿐이다.

사람을 안다는 것은 실로 어렵다. 알 수도 없거니와 조금이나마 알고 있다고 자신하는 순간 모르는 함정으로 빠져버린다. 변화무쌍한 인간을 자신도 모르는데 까짓 부스러기 잡동사니 몇 조각으로 누구를 무엇을 안다는 말인가. 오죽했으면 선각자는 “너 자신을 알라”고 했을까.

제행무상, 부처님은 제법 무상이라고 했다. 누군가를 안다고 여기는 것은 각주구검의 우를 범하는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런 인간 내면 곧 그 내면의 출렁이는 갈등을 허구의 틀로 빗은 조형물이 문학이다. 종교나 이념 등 여러 갈등 중에 특히 문학이 지향하는 궁극적 목표는 자기 내적 갈등, 곧 자기 세계를 읽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 부단히 움직이는 정체성을 탐색하는 지난한 과정이지 싶다. 그만큼 한 인간의 내면은 탐구하기 난해한 유동적이고 깊은 바다이자 무한히 넓은 하늘이다.

우린 조금 자라면 개인적 자아를 감추고 동시에 사회적 자아라는 페르소나를 쓴다. 그 사회적 자아나 물리적인 네트워크 몇 가지 조합으로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너무 섣부르게 시건방을 떠는 일이다.

그렇게 잘 알던 사람들이 헤어지면 다시 만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단단하다는 네트워크는 그 사회적 자아는 어디 갔는가.

잘 아는 사람입니다. 때론 관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무책임한 말이다. 도대체 무엇을 잘 안다는 말일까. 사람은 하나의 방대한 우주다. 그것도 변화무쌍한 대우주이다. 찾고 또 찾을 뿐이다.

우린 누군가의 그 무엇을 잘 알 수 없다. 단지 광활한 우주 중에서 우주의 한 부분 수수께끼를 탐색하고 있을 뿐이다. 그와 친할 뿐 그를 잘 안다는 것은 오만이자 교만이다. ‘인간은 ○○하는 동물이다.’ 흔히 쓰는 문장의 동물을 자칫 육체적으로 움직이는 동물로만 파악하기 쉽다. 하지만 움직이는 진짜 주체는 몸이 아니라 정신이다. 마음은 몸이 움직이지 않는 동안에도 움직인다. 동물이란 정신 곧 마음이 움직이는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니 대저 누구를 안다는 말인가.

나는 종종 넌 누구냐고 나에게 묻는다. 그러면 내 속에서 누군가 대답한다. 나도 모르는 사람인데 누구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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