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으로 - 이승오 전 광주시교육청 교육국장
2024년 05월 19일(일) 21:30
20년 전, 광주시교육청 교육전문직이라는 새로운 길에 들어서면서 담당했던 많은 업무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을 들라하면 독서교육이라 말하고 싶다. 교육국장을 마지막으로 교단을 떠나, 아미산 자락에 터를 잡고 살면서 멀리 무등산을 바라보다가도 광주교육 소식이 들려오면 귀가 솔깃해지는 것은 광주교육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아직은 식지 않음이리라.

최근에 시교육청의 ‘독서교육 내실화 추진 계획’을 살펴볼 기회가 있어 꼼꼼히 읽어 보았다. 광주 독서교육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전체적인 내용은 교육과정 연계 독서교육 내실화, 책 읽는 학교 문화 조성, 학생 중심 독서·토론·논술 프로그램 운영, 교육 공동체와 함께하는 독서문화 조성 등 네 가지 추진 과제로 구성되어 있다. 계획서 전체를 통해 필자가 파악한 광주 독서교육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제시할 수 있겠다.

첫째, 학교 급간 독서교육 연계를 강화했다는 점이다. 독서습관 형성에 초점을 맞춘 초등학교를 시작으로, 중학교에서는 독서 토론으로 소양을 함양하고, 독서·토론·논술로 사고력 신장에 역점을 두는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는 독서교육의 로드맵을 중점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독서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가서야 부랴부랴 학생부 기재용으로 진로 관련 책 몇 권을 읽고 마는 학생들을 생각할 때 초·중·고 연계 독서교육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둘째, 교육과정과 연계한 독서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하는 교육목표 달성을 위해서 독서 기반 교수·학습 지원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는 최근 대입 수능시험에서 이른바 킬러 문항이 배제되면서 문해력 기반 융합적 사고를 요구하는 문제가 다수 출제되는 경향에 비추어 보면, 교과연계 독서수업의 활성화는 이를 대비하기 위한 최상의 방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셋째, 독서를 바탕으로 창의 융합 인재를 양성하고 디지털 문해력 함양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은 교육의 성패와 직결된다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AI 시대로 특징지어지는 미래사회에 필수적인 창의적·융합적 사고력은 미래 핵심역량의 중요한 부분이며 그것은 독서교육을 통해서 길러질 수 있다.

넷째, 지역사회 유관 기관과의 협력 체제 구축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지자체의 참여 방안이 다소 미흡하다는 점이다. 광주시청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시교육청과 함께 ‘범시민 독서운동’을 전개해 매년 가칭 ‘빛고을 책 축제’를 개최하고, 이를 토대로 ‘아시아 북 패스티벌’로 발전시켜 나간다면 광주비엔날레와 함께 문화중심 도시 광주의 위상을 높이는 양대 문화사업이 아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AI 시대에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머지않아 AI가 인간의 모든 영역에서 대체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AI 시대에도 인간만의 독창적인 능력은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독서는 인간의 심층적 사고력을 기르는 데 필수적인 활동이다. 많은 석학들이 AI 시대에는 독서를 통해 인간만의 역량을 신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광주시교육청에서 추진하고 있는 독서교육 내실화 방안은 사업을 뒷받침하는 예산의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중독에 빠져있는 광주 학생들을 ‘다시 책으로’ 불러 모으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라 생각한다. 전국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광주 학생들로 인정받을 날을 생각하면서, 다시 책으로 돌아오는 광주 학생들과 선생님들 그리고 학부모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해 본다.

“내가 읽은 책들은 나의 도끼였다. 나의 얼어붙은 감성을 깨뜨리고 잠자던 세포를 깨우는 도끼. 도끼 자국들은 내 머릿속에 선명한 흔적을 남겼다. 어찌 잊겠는가?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쩌렁쩌렁 울리던, 그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서재를 정리하다 펼쳐 본 ‘책은 도끼다’(박웅현 저)에 나오는 저자의 말 중 일부이다. 멀리 보이는 무등산이 오늘따라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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