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승의 날은 더 부끄럽다 - 곽성구 전 광주일고 교사
2024년 05월 12일(일) 22:00
보내는 사람을 알 수 없는 택배가 왔다. 당황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히말라야 청정 건강 식품이다. 내가 주문한 기억도 없다. 건강보조 식품이니 보내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알고나서 먹어야 될 것 같았다. 혹시 잘못 배달된 것이 아닌지 수취인 주소를 다시 점검해 보았다. 잘못 배달된 것은 아니었다. 확인이 되지 않아서 먹지를 못하고 한참을 이리저리 생각을 해 보았지만 누가 보낸 선물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택배 회사로 전화를 하였다. 누가 보낸 택배인지를 알고 싶다 했다. 개인 정보이니 쉽게 알려 줄 수가 없다는 답이 왔다. 대신 보내신 분에게 택배회사에서 연락을 하여 전화를 주게 하였다.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깜짝 놀랐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리는 안정된 음성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당신 건강이 늘 걱정이 되어서 생각하다가 이걸 보내니 잘 챙겨 드시게” 새파란 새내기 대학생 때부터 말을 놓지 않으시더니 지금은 당신이라 하신다.

뭐가 많이 잘못 된게 분명하다. 노 교수님은 백수(白壽)를 눈앞에 두고 계신다. 내가 챙겨 드려야 마땅한 게 아닌가? 나를 되돌아 본다. ‘이렇게 나쁜 제자로 살고 있구나’ 한참을 멍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나를 되돌아 보았다. 많이 부족한 제자를 너무도 지혜롭게 살펴 주시고 챙겨 주신 그 많은 일들이 인자하신 모습과 함께 한참을 머물다가 간다. 그러다가 또다른 여러 날들을 꼬리를 물고 되돌아 보게 된다.

되돌아 생각해 보니 내가 잘못한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월 가정의 달에 어린이 날도 내 손주들에게조차 너그럽고 본받을만한 할아버지가 되지 못하고 살고 있다. 어버이 날에는 자식들에게서 이런저런 대접을 많이 받으면서도 부모로서 버팀목이 되지를 못하고 살고 있음에 부끄러웠다. 성년의 날도 있으니 이 또한 나름 의미가 있다. 나는 아직도 미숙한 생각으로 그냥 살아가고 있으니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부부의 날이 다가 오고 있다. 솔직히 나는 참 나쁜 사람이다. 한 끼를 소홀함이 없이 준비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건데 ~. 참 나는 부족한 남편임이 분명하여 많이 반성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올해 스승의 날에는 참으로 더 부끄럽다. 노 스승에게서 받은 건강식품은 더 없이 부끄럽게 하였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서도 별로 잘나지도 못한 제자의 건강을 염려하여 보내주신 노 교수님의 눈물겨운 일은 내가 더 배려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한다.

한 사람이 훌륭한 스승을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인연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성인인 한 사람에게 많은 스승들이 지나 갔을 테다. 그 중에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스승도 물론 있을 것이다. 스승들도 인간이기에 세속적인 면면들이 노출이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나를 있게한 스승들을 마음 깊은 곳에서 찾아 보면 특별한 스승들이 계실 것이다.

사람은 태어날 때 매우 약하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생존할 수 없는 미물이다. 부모님의 보살핌도 중요하고 사회의 여러면에서 도움을 받아야 생존하고 성장하게 된다. 미성숙한 존재는 독립하여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학습하고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이다.

모레가 스승의 날이다. 올해 스승의 날에는 더 없이 부끄럽다. 어떤 반성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다. 한 사람의 제자로서도 소중한 아이들을 깨우쳐 주어야 할 교직생활도 반성해야 할 일들이 수없이 떠오른다. 나를 기억하고 있을 많은 제자들에게 과연 어떤 스승이었을까? 아니 스승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게 생활하고 지냈을까? 나의 교직생활을 반추해 볼 때마다 도망가고 싶은 부끄럼으로 가득하다.

좀더 세심하게 배려하고, 좀더 너그럽게 타이를 걸, 더 지혜롭게 진로를 탐색해 주고 따뜻하게 감싸줄 걸, 그렇지 못한 제자들이 떠오르면 그 땐 왜 그랬을까? 그럴 줄을 왜 몰랐을까? 잘못된 일인줄 뻔히 알고 후회하게 될 줄을 왜 몰랐을까? 그러나 어쩌랴 이제라도 깨닫게 되었으니 그래도 다행이라 생각하자.

나의 교직생활을 반성한다. 지금 세상 어디에서 살고 계실 많은 스승님들의 강녕과 평화를 기원하며 더 세심한 배려와 관심을 주지 못한 제자들의 앞날에도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한다. 어쩐지 올 스승의 날에는 더 많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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