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아시아여성영화제’를 꿈꾸며 - 김채희 광주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2024년 04월 26일(금) 00:00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광주여성영화제는 광주에서 열리는 가장 큰 영화제이자 ‘여성’을 주제로 한 가장 활발한 문화축제이다. 매해 수많은 광주시민들이 관객으로, 창작자로, 스태프로, 자원활동가로, 심사위원 등으로 영화제를 함께 만들어간다.

2010년, ‘여성의 눈으로 보는 세상, 모두를 위한 축제’라는 슬로건으로 시작된 광주여성영화제는 매해 새로운 여성 의제를 제시하고 다양한 논의의 장을 만듦으로써 지역사회에 성평등 문화를 확산해왔다. 또한 여성 영화인들을 지원하고 지역 영화산업과 영상 문화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며 전국의 영화인들이 오고 싶어 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지역영화제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작년에는 여기서 더 나아가 ‘아시아’로의 내용과 형식의 확장을 제안하게 되었다.

아시아 여성들은 비록 각기 다른 곳에 살고 있지만 과거 제국주의 침략전쟁의 상흔이 공통으로 남아있고, 군부독재와 권위주의 시대의 온갖 폭력과 차별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글로벌 경제위기와 돌봄의 위기, 기후변화 위기 등에 함께 직면해 있다.

그동안 ‘아시아’ 영화는 이러한 특별한 아시아의 역사적 경험들이 서구의 시각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오리엔탈리즘으로 전시되곤 했다. 최근 아시아 영화들은 ‘아시아’에 대한 서구적 관점을 해체하고 다양한 아시아 지역의 복잡한 현실과 역사적 문제들을 가시화하며 ‘아시아성’을 새롭게 쓰고 있다. 특히 많은 아시아 여성 감독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 주류 서사 영화의 문법을 해체하거나 전유하며 영화의 서구·남성 중심성을 해체하며 아시아, 여성, 소수자의 서사를 펼쳐가고 있다.

광주에서 ‘아시아’ 영화제를 한다는 것은 서구 중심을 탈피하겠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아시아 영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시아 영화가 유통되는 방식을 변화시키겠다는 선언이다.

작년 11월 열린 14회 광주여성영화제에서 진행한 특별포럼 ‘여성의 영화적 시선:광주아시아여성영화제의 비전’에 초청된 페차 로 대만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광주에 온 소감을 이렇게 전했다. “오래전부터 민주의 도시, 광주에 관심이 많았지만 직접 오게 된 건 처음이다. 광주에 간다고 하니 모두들 부러워했다. 광주에 와서 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국제적인 영화제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홍콩이나 미얀마처럼 최근 민주화 운동이 활발한 아시아지역에서 광주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배우고자 한다는 기사는 많이 접해 알고 있었지만 대만에서도 광주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관심이 많다는 건 의외였다. 이는 인권과 민주의 도시로 상징되는 광주의 문화적 자산일 것이다.

광주가 가진 문화적 상징성 외에도 수도가 아닌 로컬로서 광주는 그 지역성으로 인해 서구와 아시아, 아시아와 한국, 중심부와 주변부의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도시이다. 광주는 이런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며 서로 다른 아시아들과 횡적으로 만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또한 5·18 민주화운동과 그 역사성으로 인해 광주에서 아시아 여성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소수자성,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저항하는 시민의 역사와 시민사회 등을 함께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아시아의 문화적 교류를 위한 교차점을 만드는 것은 ‘광주’의 역사와 현재적 위치성을 고려했을 때 매우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광주, 아시아, 여성, 영화 이 모든 역동성과 교차점에 주목하며 아시아 여성영화를 프로그래밍하고 영화를 통한 소통과 연대의 장을 마련, 한데 어울러질 수 있는 한판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베트남의, 이란의, 인도네시아의 여성감독들을 광주에서 만나고 아시아 인재들의 영화적 상상력을 인큐베이팅하며 아시아 여성영화의 교류와 네트워킹을 통해 진정한 아시아문화의 허브가 되는 것.

광주에서 ‘광주 아시아여성영화제’를 한다는 것은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되었던 그 모든 권위적 질서에 대한 해체이며 가장 진보적인 문화적 실천이자 진정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가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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