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도리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4년 04월 25일(목) 00:00
하이어라키(hierarchy, 위계)라는 말은 그리스어 하이어라키아(hierarkhia, 성자의 지배)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가톨릭과 봉건제의 근간이 되었는데, 교황을 최상위로 그 아래 주교-사제-부제, 국왕을 최상위로 그 밑으로 영주-기사-평민-하인 등을 두었다. 유럽에서는 이 계급제가 1000년 이상 유지됐다.

근대 자본주의에 의한 거대한 기업 조직, 한층 복잡해진 국가 행정을 위한 대규모 관료 조직이 들어서면서 직무를 등급화시켰다. 대표 또는 기관장이 연공서열, 발탁 등의 인사를 통해 조직을 구성하고 적임자를 정해 직위·직책을 부여하며 자신의 직무 일부를 위임하는 것이다. 상하가 직무상 지휘감독 관계에 있게 되며 명령이 가장 아래 단계까지 전달되는 ‘명령의 사슬(chain of command)’이 가동된다.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대부분 광역, 기초 등 2단계로 구분하고 있다. 미국은 카운티-시티·타운·빌리지, 잉글랜드는 카운티-디스트릭트, 일본은 도도부현-시정촌, 우리나라 역시 광역시·도-시군구 등으로 나눠 권한과 책임을 달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단체장, 의원은 모두 선출직이며 과거 권위주의 체제와는 달리 광역과 기초를 상하로 구분할 수 없다.

무안국제공항으로의 민간·군 공항 이전, 국립 의대 설립 등 지역 핵심 현안에 있어 전남도와 일부 시·군, 지역 정치인, 대학 등이 엇박자를 내고 있다. 성장·발전을 위해 미약한 역량을 최대한 끌어모아야 하는 전남의 입장을 외면하고 지나치게 자신들의 이익만 바라보려는 현상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전남도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순천만정원박람회, 글로컬 100 등에서 성과를 낸 순천시, 순천대의 국립 의대 관련 행보는 이해하기 어렵다. 협의 과정도 없이 자기 주장만 반복하거나 중앙정부의 판단에 기대려는 모습은 지방자치 본연의 취지도 무색하게 한다.

도민을 대표하며 지역을 총괄하는 전남도의 책임과 권한의 무게를 인정한다는 전제 하에 각 시·군은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 그 선을 넘어서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다.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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