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물과 도시락의 행복 - 나양기 농학박사, 전남도 종자위원회 부위원장
2024년 04월 23일(화) 22:30
사면이 유리창으로 되어있는 2층 원두막 창밖으로 보이는 하얀 배꽃, 유채꽃, 희고 빨강분홍의 철쭉, 그리고 핑크빛의 복숭아꽃, 사과꽃 등등….

자연은 참 신비롭다. 속살 과육이 흰배는 꽃도 희다. 사과꽃 역시 과육이 맑은 사과인 ‘홍로’, ‘후지’, ‘루비에스’ 품종 등은 하얗다. 그러나 속살이 빨간 사과인 ‘파이어크러커’ 품종은 꽃도 붉는색에 가깝다. 빨간 열매의 대명사인 석류 역시 유난히 흑장미처럼 검붉은 알맹이의 석류는 일반 석류꽃보다 훨씬 짙은 빨간색이다. 꽃 색만 그런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가을이면 맛있게 먹는 감의 경우 과실 모양에 따라 종자 형태가 다르다. 가장 많이 먹는 ‘부유(일명 진영단감)’ 품종의 종자는 약간 둥그스름하고 납작하다. 그러나 길쭉한 모양의 홍시로 먹는 떫은감 ‘대봉’의 종자는 길쭉하며 납작하다. 꽃색과 종자만 보고도 어느 정도는 과일의 색깔과 모양을 알 수 있으니 자연은 참 신비롭다.

광주에서 15분 정도의 거리인 나주 금천에 선친께서 물려주신 과일농장이 있다. 연구직 공무원으로 오랜 세월 근무하다 퇴직한 후 50여년 된 배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시험연구포장의 품종전시포처럼 1000여평에 사과, 배 등 18 종류의 과일 82개 품종을 심었으니 많은 지인들이 농장에 놀러와 깜짝 놀란다. 혼자 어떻게 이 많은 품종의 나무를 관리하느냐는 것이다.

경영연구원 소속 전문위원으로 강의 하랴, 최근까지 도단위 농업관련 협회 회장에 많은 소속위원회 활동, 또 유일한 취미인 골프 등을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 놀람 속에 혼자만 관리해 갈 수 있는 비결이 들어있다.

그 비결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정답은 다양한 과종과 다양한 품종에 답이 있다. 최근 크게 문제가 되는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우선 과일나무 혼자 스스로 서 있지 못 하거나 덕 시설을 해야 하는 배나 포도 등은 최소로 심어 시설비를 줄였다. 두 번째는 배나 사과, 감 등 한가지 과종에 한 두 품종 만을 심으면 목돈 수입은 되겠으나 혼자 작업관리가 너무 힘들다. 서로 꽃피는 시기와 수확시기가 다른 품종을 심어 일시 작업 노력을 분산하였다. 예를 들어 단감 품종만 해도 최근 가장 핫한 신품종인 대과이면서 연한 ‘감풍’ 등 8개 품종이 있다. 또 다양한 과종을 심음으로써 특정 병해충의 발생을 예방할 수 있다.

배 작업을 하다 싫증이 나고 지루하면 키위 작업을 하고 사과 작업을 하다 쉬고 싶으면 감 작업을 함으로써 작업의 지루함을 덜 수도 있다. 과종과 품종이 다양한 덕택에 학생들의 현장 실습 포장으로 활용도 하고 있다. 여기에다 추세에 맞추어 GAP(우수농산물) 인증과 로컬푸드 인증까지 취득을 하였다.

오늘은 모처럼 시간을 내어 도시락을 가져와 농장 가장자리에 가꿔 자라고 있는 두릅, 취나물 , 방풍, 미나리, 오갈피, 엄나무, 부추, 개승마 등 여덟가지 나물을 2~3개씩 채취해 데친 후 초장에 찍어 먹으며 원두막의 창밖을 보니 너무 맛있고 힐링이 된다. 보약을 먹는 기분이다.

창밖 사과나무의 꽃이 눈에 들어 온다. 올해도 걱정이다. 홍로는 꽃이 엄청 많은데 우리나라 사과의 80% 정도를 차지한다는 ‘후지’ 품종의 꽃이 별로 없으니 말이다. 걱정이 되어 사과를 재배하는 몇몇 지인과 통화를 해보았더니 작년 초여름 일조량 부족으로 특히 ‘후지’ 품종의 꽃눈이 별로 없다고 한다.

기후 위기로 전세계 소득이 2050년까지 20% 줄어들고 우리나라는 14%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독일연구소 보고가 떠오른다. 올해도 금사과가 될까 걱정이 되어 그 맛있던 밥맛이 갑자기 없어지는 느낌이 드는 건 왜 일까. 올해는 꼭 풍년이 들라고 고시래를 한번 더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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