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80대 여성 시인들의 ‘화양연화’
2024년 04월 23일(화) 10:35
장성출신 박형동 시인 지도로 박순임, 김애자, 박정애 시인 시집 발간
박형동 시인 “장성문단 다시 일으키고 싶어”…최근 출판기념회도 열어

박형동 시인(오른쪽) 지도로 시집을 펴낸 박순임 시인, 박정애 시인, 김애자 시인. <박형동 시인 제공>

예로부터 장성을 일컬어 ‘문불여장성’(문불여 장성(文不如 長城)이라고 했다. 학문과 문장에 대해서는 장성에 견줄 곳이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장성에는 내로라하는 학자와 문인들이 많았다. 하서 김인후, 노사 기정진 등 조선시대 학자들의 학풍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현대문학 부문에 있어서는 현대 희곡과 연극에 기여한 김우진을 비롯해 전후 어린이를 위한 동요에 족적을 남겼던 김일로, 황폐해진 문단에서 뛰어난 문인을 양성했던 박흡 시인 한국 수필의 거목 이상보 등은 장성이 낳은 대표 문인들이었다.

이들의 문학적 열망, 후배 양성에 대한 노력 등이 맞물려 장성의 문학은 오늘날에도 뛰어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에도 문불여장성의 맥을 잇기 위해 장성군립도서관에서 예비 문인들을 대상으로 문학지도를 했던 시인이 있어 화제다. 박형동 시인(전 전남문인협회장)이 그 주인공.

최근 박형동 시인의 지도를 받은 70대·80대의 시인들 3명이 나란히 시집을 발간해 화제다.

박순임 시인(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은 더 아름답다), 김애자 시인 ‘모닝 할머니의 봄날’, 박정애 시인(거꾸로 사는 여자3) 등 노(老) 여류 시인들이 펴낸 각각의 시집은 삶의 연륜과 문학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이들 3명 시인들은 지난 2021년, 2023년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출판비를 지원받아 작품집을 발간할 만큼 필력을 인정받았다.

당초 박형동 시인이 문예창작반을 운영하게 된 것은 “학교에서 퇴임을 하고 장성문단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싶다는 바람에서였다”며 “지난 2017년 이후 문예창작반을 거쳐간 이들 가운데 크고 작은 성과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문예창작반 글벗들은 전남과 광주 백일장에서 대상과 장원을 휩쓸었다”며 “무엇보다 고향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문학 수업을 통해 늦깎이 문인들을 많이 배출했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했다.

수업을 받고 수필가로도 등단한 이들도 있다. 김애자를 비롯해 민윤필, 류진창, 강효실, 유소희 씨 등은 문단에 데뷔해 자신의 몫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박형동 시인의 지도를 받은 유춘덕(소희) 씨는 유능한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한 협성문화재단의 ‘뉴 북 프로젝트’에 선정돼 ‘내 이름은 춘덕이’라는 수필집을 내기도 했다. 특유의 감각과 문체로 자신만의 문학의 밭을 일궈가고 있다는 후문이다.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은 인생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말할 만큼 고향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박형동 시인은 안타깝게도 얼마 전 건강을 잃은 적도 있었다. 다행히 몸이 회복되고 난 후로 “덤으로 산다는 생각으로 글쓰기를 고리로 재능기부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는 광주 신용동 복합공공도서관에서 글쓰기 강의를 진행 중이다.

문예반장을 맡아 문창반 활성화에 기여했던 김애자 시인은 “명색이 시인이라 하지만 좋은 발상이 안 떠오를 땐 한 줄의 문장도 쓸 수 없다”며 “나는 손주의 말속에서 진주를 캐내듯 내 시보다 몇 배다 더 아름다운 시를 줍는다”고 했다.

“내 정원에/ 예쁜 별장 한 채 들어섰네/ 주인 허락도 없이/ 비 오는 날 받아 비단실로 지어놨네//(중략)// 예쁜 비단집에/ 하얀 신선이 머무니/ 내 정원이 무릉도원 되었네”

‘거미줄’이라는 시는 착상이 돋보이고 언어적 묘사가 돋보인다. 마치 시인은 즐거운 놀이를 하듯 시를 쓰고 있는 듯 하다.

전남백일상 차상을 수상한 바 있는 박순임 시인은 시를 쓰게 된 계기에 대해 “지구에도 계절이 있듯이 인생에도 게덜이 있다. 지금 나의 계절은 겨울, 거둘 것 다 거두고 돌아가야 한다”며 “나는 내 손에 따뜻한 시 한 편을 쥐고 가고 싶다”고 밝혔다.

“찔레꽃이고 싶다/ 향기가 은은한/ 하얀 찔레꽃이고 싶다//(중략)// 향기로운 가시마저도/ 꽃 속에 숨기고/ 환하게 웃으며 사는/ 하얀 찔레ㄱㅗㅊ이고 싶다// 호젓한 산비탈 길에 핀/ 하얀 찔레꽃이고 싶다”

시 ‘찔레꽃’은 삶을 관조하는 노 시인의 깊은 사유와 담박한 서정을 담고 있다. 박형동 시인의 친누나이기도 그의 시는 간결하면서도 정갈함이 묻어난다.

80세에 시를 배워 올해 84세인 박정애 시인은 “비록 힘든 고난의 80인생이었지만 해마다 봄날은 꽃세상이었다”며 “아직 나의 봄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긴 강변길을 따라/ 알록달록 피어 있는/ 화사한 꽃길엔/ 내 마음도 같이 피었네// 햇살은 강물 위에서 반짝이고/ 잔잔한 물결 위헤 일렁이는 시심…”

‘꽃강2’라는 작품은 황룡강변에 펼쳐진 강의 이미지를 환기한다. 사물에 대한 감정 이입 등은 오랜 숙련의 흔적을 느끼게 한다.

한편 김애자, 박정애, 박순임 시집과 유춘덕 수필집 발간을 축하하는 출판기념회가 지난 20일 장성군립중앙도서관에서 들뫼문학회 주최, 한국예술인복지재단과 장성군립중앙도서관 후원으로 열렸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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