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꽃말 그리고 거기에 담긴 신비한 스토리들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
2024년 04월 22일(월) 11:25
화순 출신 박노식 시인 시화집 펴내
37편 시에 김상연 화가 그림 그려
5월 2일~14일 호랑가시나무서 시화전
봄이 무르익어 가면서 꽃들이 앞 다퉈 피어난다. 꽃을 보고 있으면 누구나 마음이 환해지는 것은 인지상정. 지난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고 화사한 꽃망울을 피워낸 생명의 신비는 어떤 수사로도 부족하다.

꽃에는 고유의 꽃말이 있다. 꽃을 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단상은 저마다 다르지만, 일정 부분 공유되는 지점이 있다. 꽃말이 생겨난 이유일 게다.

화순 출신 박노식 시인이 꽃말로 시를 읊은 이색적인 작품집을 펴냈다.

시집 ‘기다림은 쓴 약처럼 입술을 깨무는 일’(달아실)에는 익히 알려진 꽃들과 그 꽃들을 대변하는 꽃말을 풀어 묘사한 작품들이 수록돼 있다.

작품집에는 ‘자기애’(수선화), ‘기다려주오’(황매화), ‘순수한 사랑’(백합), ‘원숙한 아름다움’(석류꽃), ‘기다림’(파초), ‘미인의 숨결’(해당화), ‘섬세한 아름다움’(부용화), ‘행복한 종말’(칸나꽃) 등은 무심히 스쳐 지날 수 있는 꽃과 꽃말을 모티브로 한 시들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은 통화에서 “수록된 시들은 2021년에서 2022년 사이에 쓴 작품이다. 언젠가 아는 지인이 꽃을 들고 나타났는데 그 꽃이 무슨 꽃인지 몰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라일락꽃이었다”며 “아울러 지인이 ‘라일락의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인데 박 시인이 꽃말을 모티브로 시로 쓰면 좋을 것 같다‘고 말을 했다“고 전했다.

작품집에는 37편의 시마다 아름다운 그림이 딸려 있다. 그림은 박 시인의 고교 후배인 김상연 화가가 그렸다.

김상연 화가는 “박 시인과의 개인적인 친분 외에도 저 또한 시를 좋아한다. 문화 활동이 문학, 미술, 음악이 함께 곁들여지면 풍부해진다”며 “70~8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는 ‘예향’ 이미지가 강했는데 오늘날에는 많이 사라진 듯하다. 시와 그림이 결합한 작품집을 매개로 공동작업을 했던 것은 그런 연유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무거운 작업을 주로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에는 가볍고 감성적인 부분을 자유스럽게 표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며 “37편 각각의 시를 읽고 제 나름대로 재해석을 했다”며 “예전에는 그림을 보고 시를 쓰는 경우도 있고, 시를 보고 그림을 그리는 경우도 있었는데 편하게 그렸다”고 덧붙였다.

사실 독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재해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다. 더욱이 그것을 토대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에너지와 ‘감정의 노동’이 소요되는 일이다. 1년여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는 말에서 콜라보의 지난한 과정이 오버랩됐다.

37종류의 꽃 가운데 시인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어떤 꽃일까. 그는 부용화를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이유를 물었더니 “아주 오래 전 내가 좋아했던 여성이 부용화를 좋아했다”며 “와이프는 부용화 같은 사람”이라고 선문답하듯 말하며 웃었다.

“어디에서 웃음을 빼앗기고 돌아왔을 때 당신을 만났습니다//(중략)// 어느 여름날 산책길에서 누군가 나의 등을 조용히 껴안는 느낌을 받고 당신이 온 줄 알았습니다// 섬세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당신은 신비로워서 나를 다시 살려냈습니다”

‘섬세한 아름다움’이라는 꽃말을 지닌 ‘부용화’라는 시다. 어렵고 고달픈 무명시인의 삶을 살던 시절, 산책길에서 문득 마주친 부용화에서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다. 김상연 화가가 나무커팅에 아크릴로 작업한 ‘부용화’는 시와 맞춤하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환기한다.

이렇듯 각각의 시에는 꽃말 외에도 스토리가 담겨 있다. 잔잔한 인생 서사는 꽃과 병치해 삶의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스토리의 주인공은 딱 1명이다. 상상 속의 뮤즈다”라는 박 시인의 대답에서 그 뮤즈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상상의 영역일 수 있게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작품집의 또다른 흥미로운 점은 뒷 부분에 평론이 아닌 시인이 직접 쓴 에세이가 실려 있다는 것이다. “인생과 관련된, 또는 꽃말과 관련된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풀어냈는데” 자세히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의 일상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시집의 구성과 차례가 눈에 띈다. ‘젊은 날의 추억’(라일락 꽃)으로 시작해서 ‘행복한 종말’(칸나꽃)로 끝난다. 맨 처음 라일락꽃을 모티브로 시를 썼고 마지막은 칸나꽃으로 끝을 맺은 것이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어떤 의미가 맞아떨어져” 그도 놀랐다고 한다.

이성국 시인은 추천사에서 “박노식의 시는 편 편마다 정제된 언어와 고도의 압축을 통한 깊이로 때로는 숙연하고 때로는 간절하고 애달프다”고 평한다.

한편 오는 5월 2일부터 14일까지 양림동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에서 시와 그림을 함께 전시하는 시화전이 열릴 예정이다. 전시 첫날 5월 2일은 같은 장소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박 시인은 지난 2015년 ‘유심’에 ‘화순장을 다녀와서’ 외 4편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지금까지 시집 ‘고개 숙인 모든 것’, ‘마음 밖의 풍경’ 등을 펴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