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자수꽃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4년 04월 04일(목) 00:00
제목이 눈길을 끌었던 ‘쓰지 않으면 죽을 거 같아서’(글항아리)의 저자 이혜숙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광주에서 꽤 알려진 음식점을 운영하던 그는 일하는 짬짬이 글을 쓰며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던 그의 글처럼, 손님들을 위해 한끼 식사를 차려내는 정성스런 마음을 느낄 수 있어 기분이 좋았다.

이씨가 얼마 전 펴낸 책 ‘계절을 먹다’(글항아리)를 읽으며 그의 말처럼, ‘쉬면 못 사는 몸을 가진 어머니들’과 그 시절의 음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가 맛깔스런 남도말로 들려주는 70년에 걸친 음식 이야기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이다. 그는 떡을 먹을 때나 고구마를 먹을 때나 언제나 함께였던 “싱건지는 위로였다”고 말한다. “국물이나 거석을 더 넣어 누구도 맛 못보는 사람이 없게 했던” 엄마를 떠올리며 자신을 위해 무한정 고구마 순을 벗기던 모습도 추억한다. 홍어애국, 열무지, 병어조림, 멸치젓, 물천어 지짐 등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에는 숱한 사연이 담겼다.

가족과 동네사람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낸 엄마들의 또 다른 마음을 만날 수 있는 전시에 다녀왔다. 수만점의 민속품을 소장하고 있는 비움박물관의 ‘철부지 문명의 봄, 한국전통문화 자수꽃 피다’전(4월30일까지)이다. 전시에는 밥상보, 베겟모, 수건, 방석보, 인두판 등 어머니들이 일일이 손으로 수놓은 자수 작품 수백점이 나왔다. 온갖 꽃과 나무, 새 등 다양한 소재를 오색실로 수놓은 작품은 더 없이 아름답다.

친숙한 밥상보와 베겟모를 보며 작은 소품 하나 하나에도 정성을 다해 수를 놓았던 어머니들의 마음을 생각했다. ‘계절을 먹다’ 속에 등장하는, 농한기 눈오는 날 증조할머니, 할머니, 어머니가 함께 모여 바느질을 하는 모습도 절로 떠올랐다. 박물관 이영화 관장은 “밥 짓고 옷 짓고 복 짓던 가난한 어머니는 아름다움의 창조자”라고 말했다.

전시된 것 중 새 것은 없다. 버려진 것들을 다듬고 고치고 일일이 다림질해 내놓았다. 오래된 물건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했다. 사방에서 꽃들이 피어나는 중이다. 비움박물관에 핀 꽃들도 만나러 가보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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