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어느 중생의 기도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4월 01일(월) 00:00 가가
그날은 유독 안개가 짙었다. 사원에 오르는 길은 앞 사람 엉덩이나 보일 정도로 경사까지 심했다. 한발 한발 옮기는 것도 수행처럼 느껴졌다. 이윽고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준다고 알려진 한 도량. 벌써 많은 사람이 운집해 있었다. 험한 산자락에 자리한 만큼 사람도 뜸할 것이라 여겼던 것은 내 오산이었다. 겨우 비집고는 들어섰으나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눈앞에는 엎드렸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는 몸짓만 가득 차 보였다. 산마루까지 휘어 감은 짙은 안개는 주변의 풍경마저 모조리 흡수해버린 채 예의 몸짓만을 클로즈업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결연해 보였다. 단정히 서서 두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혀 머리를 바닥에 대는 한없이 낮은 자세였다. 팔을 뻗어 손바닥을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 역시 공손해 보였다. 머리 위로는 색색의 연등이 걸려 있고, 그리고 그 열린 틈으로 커다란 불상이 보였다. 학사모같이 납작한 관모에 두툼하고 넉넉해 보이는 형상이었다. 그는 희부윰한 허공을 광배처럼 두르고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가볍게 편 손가락으로 땅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호, 소문 따라 찾아오긴 했지만 그 발치 아래 당도한 것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했다.
그렇긴 해도 호젓한 독대는 꿈도 못 꿀 성싶었다. 이미 문전성시를 이룬 노천법당은 내 차지가 될 상황이 전혀 아니었다. 저마다 간절한 소망 하나 사뢰려고 불원천리 달려온 것이 아니겠나.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려고 세 시간여를 서둘러 온 참이었으니까. 문제는 좀처럼 빈자리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거기 엎드려야 비로소 내 원(願)도 접수될 수 있을 텐데 말이었다.
난간에 기대어 차례를 기다렸다. 나는 별로 신실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즈음 하는 일은 비는 것밖에 없었다. 부처님은 물론 하느님에게도 빌고 성모님에게도 빌었다. 나무에게도 빌고 바위에게도 빌었다. 해가 뜨면 해님에게 빌고 달이 뜨면 달님에게 빌었다. 날아가는 새에게도 빌고 매미에게도 빌었다. 제발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달라고, 그건 누가 봐도 부당하지 않느냐고, 부디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문득문득 간절해지곤 했다.
이슬비 오는 아침, 창밖에 매미 한 마리가 보였다. 거실 창문에 바짝 붙어 내 거동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리쳐 부르는 것도 같았다. 연일 잠을 설친 내 꼴은 그저 심란할 뿐이었다. 나는 흠칫 몸을 사렸지만 그보다 반가움이 더 앞섰다. 그는 곧 날아가 버릴 것이고, 누구에게 무엇을 발설할 존재도 아니었다. 그악스러우리만치 기세 좋은 울음은 단지 내 시선을 끌고자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을 터였다. 그것은 다만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울음에는 광명을 구한 자의 해방감이 가득했으며, 탈각을 완수한 존재로서 신성이 물씬했다.
나는 조심조심 그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가까이 그와 마주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날아갈 기미도 전혀 없었다. 아마도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줄 결심인 듯했다. 아니면 긴히 전할 말이라도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잠자코 그를 응시했다. 그도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이었지만 아무 두려움도 적의도 없이 한참을 그렇게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비가 그치고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보였다. 문득 그가 날아올랐다. 그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퍼뜩 그의 꽁무니에 내 비원을 매달았고, 그는 충실한 전령처럼 저 건너로 날아갔다.
이따금 새나 나비가 앉았다 갈 때도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화들짝 반가운 존재였다. 한순간에 희망을 솟구치게 하는 신의 대리자이기도 했다. 그들을 영접하는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랐다. 그들은 결코 우연히 날아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분명 그들의 소임이 있을 것이었다. 그걸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혹시나 내 거동을 저어하지나 않을까, 그때마다 얼마나 조신하게 굴었던지.
이윽고 빈자리가 생겼다. 높이 좌정하신 여래를 향하여 두 손을 모아 깊은 절을 올렸다. 이 많은 사람의 기도를 어찌 다 헤아리실는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제 기도는 꼭 들어주시라,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지. 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다 비추듯 부처님 은덕이야 아니 닿는 데가 없을 터. 나는 더욱 깊이 몸을 숙였다.
이슬비 오는 아침, 창밖에 매미 한 마리가 보였다. 거실 창문에 바짝 붙어 내 거동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소리쳐 부르는 것도 같았다. 연일 잠을 설친 내 꼴은 그저 심란할 뿐이었다. 나는 흠칫 몸을 사렸지만 그보다 반가움이 더 앞섰다. 그는 곧 날아가 버릴 것이고, 누구에게 무엇을 발설할 존재도 아니었다. 그악스러우리만치 기세 좋은 울음은 단지 내 시선을 끌고자 한 것일 뿐 다른 의도는 없을 터였다. 그것은 다만 나를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아닌 게 아니라 그의 울음에는 광명을 구한 자의 해방감이 가득했으며, 탈각을 완수한 존재로서 신성이 물씬했다.
나는 조심조심 그에게 다가갔다. 얼굴을 가까이 그와 마주했다.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날아갈 기미도 전혀 없었다. 아마도 진지하게 내 말을 들어줄 결심인 듯했다. 아니면 긴히 전할 말이라도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잠자코 그를 응시했다. 그도 역시 나를 보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만남이었지만 아무 두려움도 적의도 없이 한참을 그렇게 마주 보고 있었다. 그 사이 비가 그치고 언뜻언뜻 푸른 하늘이 보였다. 문득 그가 날아올랐다. 그는 순식간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나는 퍼뜩 그의 꽁무니에 내 비원을 매달았고, 그는 충실한 전령처럼 저 건너로 날아갔다.
이따금 새나 나비가 앉았다 갈 때도 있었다. 그들은 언제나 화들짝 반가운 존재였다. 한순간에 희망을 솟구치게 하는 신의 대리자이기도 했다. 그들을 영접하는 나의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랐다. 그들은 결코 우연히 날아든 것이 아니다. 그들에겐 분명 그들의 소임이 있을 것이었다. 그걸 방해해서는 안 되었다. 나는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혹시나 내 거동을 저어하지나 않을까, 그때마다 얼마나 조신하게 굴었던지.
이윽고 빈자리가 생겼다. 높이 좌정하신 여래를 향하여 두 손을 모아 깊은 절을 올렸다. 이 많은 사람의 기도를 어찌 다 헤아리실는지 알 수 없지만, 부디 제 기도는 꼭 들어주시라, 머리를 조아렸다. 아니지. 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을 다 비추듯 부처님 은덕이야 아니 닿는 데가 없을 터. 나는 더욱 깊이 몸을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