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놀고 있는 시골 땅 어찌하리오
2024년 03월 31일(일) 19:10
놀리는 논·답 늘어 고심…농지은행제도 활용 현명한 선택을

/클립아트코리아

예로부터 선조들의 땅에 대한 애착은 유별났던 것 같다. 그 때문인지 농사짓는 땅을 판다는 것은 웬만큼 큰 변고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박이나 빚으로 집과 토지를 날리는 경우나 가족 병구완을 위해 하릴없이 금쪽같은 땅을 팔아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처분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스스로 땅을 내놓는 것이 큰일이고 드물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자식 농사를 위해 소는 팔아도 농토만은 팔지 않고 억척스럽게 일해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우리 부모님 세대 농부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농촌이 고령화를 넘어 초고령화되고 있는 요즘은 그 의미가 조금 퇴색되어가는 것 같다. 농사짓기가 버거워 자식들에게 물려줬지만, 여러 사정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게 되면서 휴경하는 ‘놀리는 땅’이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만큼 농촌의 땅이 가치와 활용도 측면에서 별 볼 일 없어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얼마 전 지인이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시골 농지를 팔아야 할지 고심이라며 의견을 물었다. 지인의 아내가 커피전문점을 창업해 돈이 필요한데 물려받은 논을 팔아 도움을 주고 싶다는 얘기였다. 요즘 시골 땅은 거래도 없고 매매가격도 내려가고 있어 고민이라고도 했다. 지키고 있자니 활용할 수 없을 것 같고 팔자니 손해라는 생각이 드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는 것이다. 나는 네가 판단할 문제라는 대답 외에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이야기에 상황은 조금 다르지만, 과감하게 땅을 판 처분한 이의 이야기를 떠 올렸다. 평생 농부로 살아온 한 어르신은 농사일이 힘겨워지자 은퇴하는 심정으로 농지를 처분했다는 내용이다. 농사만 짓느라 노후 준비가 안 됐다고 판단한 그는 농지를 팔아 그 돈으로 노후생활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다. 쌀농사를 짓던 곳이라 시세가 좀 덜 나온 것이 서운했지만 결정에 어느 정도 만족감을 표했다고 전해진다.

두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만감이 교차했다. 땅을 포기하는 농부의 마음은 얼마나 애달플까, 땅까지 판 돈인데 유용하게 쓰이겠지, 새로운 땅 주인은 그 땅을 어떻게 활용할까? 등등.

또 이들이 이 같은 결정에 앞서 ‘농지은행제도’를 운영하는 농어촌공사에 문의했으면 결정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농지은행은 농가의 영농규모 확대와 농가소득 증대에 이바지하기 위해 은퇴농, 자경곤란자, 이농자 등의 농지를 매입·임차·수탁받아 청년농, 창업농, 전업농, 귀농인, 농업법인 등에 매도·임대하는 농지 종합관리기구이다. 농지를 담보로 연금을 주고, 청년과 귀농·귀촌인에게 농지를 임대하는 등 쇠락하는 농촌에 활력과 희망을 주며 성과를 내고 있다.

최근 농업을 은퇴한 고령 농업인의 생활 안정을 돕기 위해 농업인이 소유한 농지를 공사에 매도 또는 매도를 조건으로 임대하는 경우 매월 일정 금액의 직불금을 지원하는 ‘농지이양 은퇴직불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고 있다고 하니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시대가 변했다고 해도 농부에게 있어 땅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생명 같은 존재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농사지을 사람이 줄어가고 놀리는 땅이 지천이 되면서 혹 처분해야만 한다면, 땅이 가진 삶의 원천이자 생명을 키우는 터전으로써 소중한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현명한 결정을 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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