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가시나무 - 이중섭 소설가
2024년 03월 27일(수) 22:00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분 속 나무를 들여다보았다.

“어, 어제보다 꽃을 더 많이 피운 것 같은데?” 아내는 그냥 쳐다만 보았다. 몇 송이 피었던 노란 꽃이 하룻밤 사이에 여기저기 나뭇가지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다. 작년에 열렸던 열매가 아직도 예닐곱 개나 달려 있었다. 둥글고 짙은 녹색 잎 사이로 빨간 열매가 선명했다.

어제 아침이었다. 근무가 없는 날이라 조금 일찍 일어났다. 관악산 호수공원까지 걷다가 돌아왔다. 가게 문을 여는데 나무와 꽃을 가득 실은 소형 트럭이 스피커를 울리며 다가왔다. 봄을 맞아 좋은 관상용 나무를 하나 구하자고 마음먹었다.

천천히 살폈다. 다른 식물이나 꽃에는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잎도 매끈하고 꽃망울 머금은 동백나무에 눈길이 갔다. 그런데 서양 동백인데다 꽃마저 하ㅇㅒㅆ다. 진한 분홍이나 빨강이면 했다. 크기는 적당한데 나무줄기가 가늘고 전체적인 나무 모양이 마음에 차지 않았다. 바로 옆에 수형(樹形)이 멋진 한 나무가 내 눈길을 유혹했다. 진한 녹색의 잎사귀도 가지마다 무성했다. 둥근 잎을 가진 호랑가시나무였다. 나무 모양새도 좋았다. 원줄기가 두 가지로 벌렸다가 다시 서너 개의 잔가지로 뻗은 모습이었다. 화분에 심어놓은 나무치고는 꽤 품위가 있었다.

언뜻 관상용 매화의 모습을 풍겼다. 맹감보다 조금 작고, 찔레꽃 열매만큼 한 빨간 열매도 진한 녹색 잎 사이에서 더 빛나 보였다. 벼꽃 같은 노란 꽃이 은은하게 향기를 품고 나를 바라보았다. 육만 원이라고 했다.

“오만 원에 하나 주실 수 있어요?” 사내는 오십 살쯤 보였다. 아침부터 하나 팔았다는 표정이 훤히 보였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달랐다.

“아따, 아침부터 만 원이나 깎아버리네.” 조금 무거웠다. 가게 문 옆에 놓았다. 교대하러 나온 아내가 화분의 나무를 유심히 보더니 환하게 웃었다.

“엄청, 좋아 보이네! 얼마 줬어요?” 나는 얼른 화분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놓고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볼수록 마음에 들었다. 옥상에 있는 흙을 가져와 나무 밑동을 두툼하게 돋았다. 일반 꽃나무에 비해 뿌리가 크게 자랄 텐데 화분이 감당할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물을 흠뻑 주었다. 식물 영양제를 사 와 호랑가시나무 화분에 꽂았다. 옆에 있는 다육식물과 꽃 그리고 선인장이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도 물을 주고 영양제를 꽂아주었다. 화분이 놓인 베란다를 둘러보니 엉망이었다. 넝쿨식물은 어지럽게 흘러넘치고 선인장은 오래돼 반은 썩은 상태에서 줄기들이 난삽하게 엉켜있었다. 가위로 썩은 선인장 줄기를 잘랐다. 자른 줄기를 쓰레기봉투에 넣었더니 양이 많았다. 정리하고 나니 베란다가 깔끔했다.

기분이 좋았다. 손을 깨끗이 씻고 이른 점심을 먹고 다시 가게에 나갔다. 아내가 휴식을 취할 시간이었다. 가게는 오늘따라 제품들이 집 베란다처럼 어지럽게 뒤엉켜 보였다. 집이나 가게나 할 일이 천지였다. 한참 정리하는데 아침에 주문했던 물건이 들어왔다. 세 박스나 되었다. 하나하나 숫자를 체크하고 새로 들어온 물건을 진열하고 나머지는 안쪽에 쌓아놓았다. 바쁘니 하루가 너무 길었다.

한숨 쉴까 하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누구 맘대로 선인장을 잘랐어? 왜 잘랐어? 왜 왜 왜!” 아뿔싸, 뭔가 잘못했구나 하는 미안함보다 비 오는 날 휘파람을 불다 벼락을 맞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보기 싫어서 그랬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내 화분을 왜 당신 맘대로 해! 꽃 피는 거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제야 베란다 문턱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설거지나 청소를 끝낸 후에 휴식을 취하며 화분 속 꽃을 즐기는 기분을 망쳐놓았다. 평소 밭농사에 무관심하다가 봄의 길목에서 밭을 갈아엎던 아버지의 처지가 되어버렸다. 더덕, 생강 그리고 뿌려놓은 씨앗들을 뒤죽박죽 엉망으로 만들어 버린 꼴이었다. 화가 나 고래고래 소리치던 어머니의 모습이 겹쳤다.

며칠이 지났다. 여느 때처럼 식사하러 집에 들어왔다. 베란다에 흩어져있던 화분들이 정리되어 깔끔하게 놓여 있었다. 꼴사납던 식물들도 말끔한 얼굴로 바뀌었다. 마음이 변한 아내가 화해의 손짓을 베란다 화단에 펼쳐놓았다. 가시나무 아래에서 봄 햇볕을 즐기다 호랑이와 맞닥뜨린 꿈을 꾼 요 며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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