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국회의원달력’ 보며 농사 짓던 시절이
2024년 03월 24일(일) 19:35
농사달력, 한해 농사 지침서…첨단 농법 등장에 설자리 잃어
농사를 짓는 사람에게 농사달력은 한해 농사의 계획표이자 지침서와 같은 역할을 한다. 농어촌에 집마다 농협이나 농어촌공사 등에서 만든 농사달력이 집안 잘 보이는 곳에 하나씩은 자리를 잡고 이유이기도 하다. 나 역시 농사에 대해 아는 것이 미천해, 농사 적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이를 참고하는데 참 실용적이다.

문명사에 있어 달력의 등장은 그야말로 ‘혁신’이었을 것이다. 일단, 씨를 뿌리거나 거름을 하는 시기를 잡는 것만 해도 매우 어렵고 빡빡한 작업일진데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달력에 따라 제때에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농사일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달력(calendar)의 어원은 ‘회계 장부’라는 뜻의 라틴어 ‘calendarium’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고대 로마에서는 제관(祭官)이 초승달을 보고 피리를 불어 월초(月初)임을 선포했다고 하는데, 이때 매월 초하루의 날짜를 ‘calend’라고 했다고 한다. 초승달이 뜨면서 밤이 밝아지기 시작했고, 이를 기록한 것이 시초가 돼 지금과 같은 모습의 달력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기원한 달력은 그만큼 유용했으며, 태양력에 기반을 둔 오늘날의 달력이 나와 대중적으로 쓰일 때 까지도 중요하게 다뤄졌다.

그래서인지 달력은 귀한 존재였다. 불과 오십여 년 전만 해도 열두 장짜리 벽걸이 달력은 요즘처럼 흔하게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대신 연말이 되면 ‘국회의원달력<사진>’이라고 불렀던 한 장 짜리 달력이 상큼한 잉크 냄새를 풍기며 이·통장을 통해 집집이 딱 한 장씩 전달됐다. 가로세로 크기가 오늘날의 열두 장 짜리 벽걸이 달력 정도의 것으로 한 장에 열두 달이 다 들어 있었는데, 가운데 큼지막하게 지역 국회의원 상반신 사진이 들어 있었기에 국회의원달력이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달력에는 국회의원 사진뿐 아니라 영농도표도 들어 있었다. 절기에 따라 농가에서 해야 할 농사일이 빽빽이 기록된 표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농가월령 달력인 셈이었다. 농가에서는 이 달력을 온 식구들 눈에 잘 띄도록 마루의 벽에다 풀을 잔뜩 칠해 붙여 놓았다. 보잘것없는 한 장짜리 달력일망정 한 해 동안 참으로 요긴한 농가의 동반자가 아닐 수 없었다. 이 달력이 왜, 언제 사라졌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선거법 위반의 소지가 있어 그랬지 않았나 싶다.

얼마 전 ‘파종달력’ 이라는 것을 접했다. 생명역동농업에서 활용하는 파종달력 2024년 판이다. 독일의 마리아 툰이 수십 년 동안 실험과 관찰을 통해 황도상의 12 별자리가 각각 다른 날에 잎, 뿌리, 열매, 꽃에 강한 자극을 줘 작물이 잘 자라도록 하는 것을 알아내어 만든 달력이다. 파종달력이 알려주는 날짜에 따라 작물을 심거나 가꾸면 수확량이 많아지고, 그 작물이 가진 유전적 특성이 다음 세대에 잘 전달된다고 한다. 하지만 독일에 저작권이 있어서 판권을 지불하고 번역, 제작한 것이어서 소수의 사람만 알고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아쉽다.

요즘 농사달력의 쓰임새가 점차 줄어들고 설 자리를 잃어 가고 있는 것 같다. 농사도 첨단화돼 컴퓨터는 물론 휴대전화 하나로 뭐든 할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그날의 할 일과 한 일을 달력에 꼼꼼히 기록하며 농사일을 하던 아날로그 방식에 정이 더 가는 것은 내가 구시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일까.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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