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은퇴자의 글쓰기와 기록의 쓸모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3월 18일(월) 00:00
어떤 분이 책을 한 권 보내왔다. 워낙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먹고 사느라고 엄두도 못 내다가 은퇴 후에야 비로소 꿈을 이루었노라고 했다. 벌써 세 번째 책이라니, 그 부지런한 사랑이 감탄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그는 하루도 쓰지 않는 날이 없다고 했다. ‘둔필승총(鈍筆勝聰)’, 둔한 붓이 총명한 머리보다 낫다는 말을 스승 삼아 날마다 습관처럼 쓴다고 했다. 무엇이든 적어두지 않으면 잊게 마련이니, ‘적자생존(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의 원리를 누구보다 깊이 깨우친 것이리라.

그의 이야기는 옹기종기 모여앉은 형제들 같다.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이룬 다도해 같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모여서 두툼한 한 권의 역사가 되었다. 내용물은 수수하고 담박하다. 거칠고 투박하게도 느껴진다. 형식에 얽매지도 않고 기교도 없다. 언어적 수사에 골몰하거나 구태여 의미화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가공품이라기보다 자연산에 가깝다. 화려하고 장식적인 것보다 소박하고 솔직한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깔끔하게 정돈되었다기보다 덜렁덜렁 치워놓은 편안한 거실 같다. 자랑도 자만도 없다. 잘잘못을 가리는 냉철한 잣대보다 긍정하고 화합하는 쪽이다. 천천히 조심조심 걷는다기보다 성큼성큼 활보하기를 즐긴다고 할까.

사실 나는 그분과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책 한 권을 읽고 나니 오랜 친구라도 된 듯 친밀감이 느껴진다. 그의 가족, 일상, 취미,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뭔지 다 알 듯하다. 그가 얼마나 손자들을 사랑하는지, 아내에 대한 속마음은 어떠한지, 친구들 여행 바둑 붓글씨 수영, 그리고 왜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는가에 대해서도 웬만큼은 알 것 같다. 일대일의 긴 대화를 나눈 듯, 읽기 전과 읽기 후가 이렇게 다르다니….

수필이라는 장르는 확실히 존재의 고유함을 보여주는 가장 적합한 양식임이 분명하다. 한 존재의 일상과 그 세계를 정치하게 다루는 것이 수필이라고 한다면, 거기에 담기는 건 그 자신의 고유한 삶이 아니겠나. 태어나고 죽는 것은 삶의 벗어날 수 없는 형식이며 각각의 삶 또한 크게 다르지 않지만, 한 권의 수필집 속에 들어 있는 존재의 행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만의 고유함을 발견하게 된다. 그 같고 다름을 발견하는 일은 의외의 기쁨을 준다. 낯설고 신선해서 좋고, 비슷해서 또 달라서 좋다.

한 권의 수필집은 필부필부의 삶도 소중하고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준다. 높은 지위에 올라 권력을 휘두르고 큰 빗돌에 이름을 새겨야만 그 이름이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고 평범해도, 작고 보잘것없어도 모두의 삶은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일깨워 준다. 힘센 자만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적는 자가 살아남고 꾸준해야 살아남는다는 것을 일러 주기도 한다.

역사는 기록하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그는 스스로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다. 역사는 나라와 민족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필부필부 장삼이사들에게도 똑같이 있으므로. 자신에게도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내력과 제 삶의 이야기와 그리고 그것을 들려줄 후손이 있으므로. 그러나 기록이 아니면 그 어느 역사도 알 길이 없다. 하찮다 여길 개인의 역사도, 거대한 국가의 역사도 모두 기록에 의해 남는다. 기억은 곧잘 사라지거나 왜곡될 수 있지만, 기록은 기억을 도울 뿐 아니라 더 오랫동안 생생하게 기억하게 해준다.

할아버지로서 그는 훗날의 독자들을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아직 어린 독자들이지만 머지않아 가장 친애하는 독자가 되어줄 것을 믿는다. 그걸 생각하면 글쓰기만큼 설레는 일도 없다. 그러니까 그는 연결하는 사람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과거와 현재와 미래, 지금 사람과 다음 사람, 나와 너를 연결하는 가장 분명한 도구는 기록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이 기록물을 통해서도 그는 먼 후대에까지 연결될 수 있으며, 자신이 경험한 바를 다시 돌아볼 수 있고, 더불어 나누고 소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스스로 기록하는 동안 그는, 때때로 닥치는 혼돈과 불안과 무의미를 넘어서기도 할 것이며, 흐트러진 생각들을 가지런히 꿰어내기도 할 것이다.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원하는 삶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을 두 번 사는 놀라운 경험도 해보게 될 것이며, 세상을 건너가는 지혜도 얻게 될 것이다. 이 모두가 ‘씀’으로써 일어나는, 기록의 쓸모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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