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라디오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3월 03일(일) 22:00 가가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은 라디오를 ‘부족의 북’에 비유했다. 라디오는 잠재의식의 심층에서 부족의 뿔피리나 고대 북의 울림처럼 작용한다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은 보지 못하고 오직 소리만 듣게 되는 라디오는 청취자와의 사이에 내밀한 친밀감을 만들어 낸다. 시각의 대상이 되는 그림이나 문자가 보는 자와 일정한 거리를 전제하는 것과 달리, 소리는 듣는 자의 공간(거리)을 채우면서 또한 밀착된다. 시각 정보의 부재가 둘 사이를 오히려 끈끈하게 연결해주는 셈이다.
라디오는 인간 내면의 깊은 잠재의식을 울리며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으로 소용돌이치게도 하였다. 히틀러는 자신의 목소리를 확성기(라디오)로 전달해 권력을 만드는 중요한 도구로 삼았으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도 목소리가 주는 위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가 애용한 ‘노변담화’는 ‘따뜻한 난롯가에서 나누는 친밀한 대화’답게 최고의 청취율을 보이며 대공황 및 제2차 세계대전으로 힘든 시기의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언덕이 됐다.
라디오가 소리만 내고 어떤 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청취자의 상상력이 넓고 깊게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준다는 말이다. 텔레비전이나 영화 같은 시각 매체가 상상의 여지를 별로 제공하지 않는 반면 라디오는 우리의 감각을 더욱 확장하여 준다. 우리는 소리에 기대어 주변의 상황을 해석하고 세계와 소통하며 자신을 표현한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소리를 지니고 있어 자명고처럼 스스로 울리기도 하고 타악기처럼 두드려야 하는 것도 있지만, 세상에 소리를 품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라디오는 그 모든 소리의 압축파일처럼 침묵과 발화를 거듭하며 우리의 내면을 두드린다.
라디오는 한 산골 소녀에게도 ‘고대의 북’처럼 찾아 왔다. 아직 문명의 이기(利器)들이 도래하기 전, 가장 먼저 당도한 것이 라디오였다. 그 신기한 물건은 우리를 기꺼이 종종걸음치게 하였다. 친구들과 놀다가도 숙제를 하다가도 ‘어린이 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라디오 앞으로 모여들었으니, 그것은 놀이보다도 공부보다도 훨씬 핫(hot)하고 신기한 것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또래 아이들의 노래자랑도 하고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같은 연속극도 했다. 맑고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노래와 목소리, 마루치와 아라치의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동경과 부러움, 자부심과 통쾌함을 안기며 내 유년의 한 장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상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퍼내도 퍼내도 계속되는 이야기들이 다채롭고 풍성했다. 볼 수 없으므로 더 크게 열린 두 귀는 강한 흡인력으로 뭐든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어린이 시간’은 해질녘이면 벌어지는 짧은 축제처럼 늘 아쉽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내 두 귀는 아직 쫑긋하게 서 있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김○○, 기술 이○○, 프로듀서 박○○였습니다.’라고 하는 마지막 멘트를 들어야 했다. 그중 ‘프로듀서’라는 말, 아나운서도 성우도 다 놔두고 왜 하필 이름도 낯선 ‘프로듀서’였는지 모르겠다. 무대 위의 배우도 좋지만 그보다 무대 아래의 역할에 더 끌렸던 것인지, 들리고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타고난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로 하여 나도 꿈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한낱 구호가 아니다. 비록 짧은 경험에 불과했을지언정 나는 두 번이나 그 꿈을 이루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방송반을 모집했다. 거기에서 또 ‘프로듀서’라는 말을 만났다. 화들짝 놀란 나는 기꺼이 응시했고 그리고 꿈을 이루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원고를 쓰고 음악을 고르고, 그렇게 신나는 일도 없었다. 유치하고 어쭙잖은 경험이었지만 마음은 한사코 그쪽으로 기울었다. 대학에 가서도 한동안 그에 빠져 살았다.
다시 라디오를 듣는다. 유년의 그때처럼 뉘엿뉘엿 해질녘이다. 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여행 중이다. 클래식부터 크로스오버, 월드뮤직, 재즈에 이르기까지 국경도 장르로 제한 없이 넘나드는 황홀한 시간. 음악도 좋은데 진행자의 목소리는 더 좋다. 다정하고 친근한 음성에 무담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따스한 위로를 받는 듯도 하다. 다시 꿈을 꾸는 시간이다.
라디오에서는 또래 아이들의 노래자랑도 하고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같은 연속극도 했다. 맑고 또랑또랑한 아이들의 노래와 목소리, 마루치와 아라치의 긴박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동경과 부러움, 자부심과 통쾌함을 안기며 내 유년의 한 장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세상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었다. 퍼내도 퍼내도 계속되는 이야기들이 다채롭고 풍성했다. 볼 수 없으므로 더 크게 열린 두 귀는 강한 흡인력으로 뭐든 빨아들일 것만 같았다.
‘어린이 시간’은 해질녘이면 벌어지는 짧은 축제처럼 늘 아쉽게 끝이 났다. 그러나 내 두 귀는 아직 쫑긋하게 서 있었다. ‘…지금까지 아나운서 김○○, 기술 이○○, 프로듀서 박○○였습니다.’라고 하는 마지막 멘트를 들어야 했다. 그중 ‘프로듀서’라는 말, 아나운서도 성우도 다 놔두고 왜 하필 이름도 낯선 ‘프로듀서’였는지 모르겠다. 무대 위의 배우도 좋지만 그보다 무대 아래의 역할에 더 끌렸던 것인지, 들리고 보이는 것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저 너머에 대한 호기심이었는지, 그도 아니면 타고난 성격 탓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로 하여 나도 꿈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한낱 구호가 아니다. 비록 짧은 경험에 불과했을지언정 나는 두 번이나 그 꿈을 이루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자 방송반을 모집했다. 거기에서 또 ‘프로듀서’라는 말을 만났다. 화들짝 놀란 나는 기꺼이 응시했고 그리고 꿈을 이루었다. 프로그램을 만들고 원고를 쓰고 음악을 고르고, 그렇게 신나는 일도 없었다. 유치하고 어쭙잖은 경험이었지만 마음은 한사코 그쪽으로 기울었다. 대학에 가서도 한동안 그에 빠져 살았다.
다시 라디오를 듣는다. 유년의 그때처럼 뉘엿뉘엿 해질녘이다. 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여행 중이다. 클래식부터 크로스오버, 월드뮤직, 재즈에 이르기까지 국경도 장르로 제한 없이 넘나드는 황홀한 시간. 음악도 좋은데 진행자의 목소리는 더 좋다. 다정하고 친근한 음성에 무담시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하고 따스한 위로를 받는 듯도 하다. 다시 꿈을 꾸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