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사람들 - 정봉남 전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2024년 02월 26일(월) 00:00 가가
톡캘린더에 알람이 뜬다. 수요 낭독모임을 잊지 말라고 알려주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를 낭독하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다. 열댓 명의 사람들이 매주 낭독과 토론을 활발하게 이어간다. 모임이 끝나면 읽었던 내용과 관련된 자료들을 공유하는데 음악과 영화, 고문헌과 전시공연을 넘나드는 다채로운 정보에 놀란다. 말 그대로 집단지성의 힘이다.
“같이 읽어서 그런가. 나도 읽었던 부분인데 새롭게 다가와.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들이 오가잖아. 감탄하면서 계속 듣게 되는 거야.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책을 보면 마지막 문장이 머리를 때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거였구나 이해가 돼.” 해외에서 참여하는 친구의 말이다.
올해는 친구 따라 책벗들이 사는 세상을 유랑하고 있다. 지향이 맞으면 정착민이 되어볼까도 싶고, 새 집을 지어 사람들을 초대하는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오픈채팅방 ‘연두의 책소식’은 보물창고다. 박씨를 물어다주는 흥부네 제비 같다.
‘2024 마포 각양각책 북페스타’소식도 이곳을 통해 접했다. 새로운 시각으로 책을 만들어 독자에게 새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출판창작자 부커(Booker)와 좋은 책과 동네책방을 찾아 우리 사회의 문화적 자양분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씨커(Seeker)의 만남은 정부와 지자체의 책 관련 예산이 사라지면서 위축된 출판문화 속에서도 꿈틀대는 저항정신 같아 반가웠다.
책 읽는 시민들은 스스로 자기 조건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다. 읽고 생각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인간과 인간 사회를 떠받친다고 믿어졌던 원칙들이 무너질 때, 현실이 너무나 무도해서 그런 것들은 말짱 다 거짓말처럼 보일 때, 그때도 그것들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이 문명의 빠진 주춧돌을 메울 것이다...”(오수연 역자후기.‘우리는 새벽까지 말이 서성이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에서)
누군가는 팔레스타인의 인도적 위기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밤’을 열고, 기적의도서관 20주년을 축하하며 ‘느낌표 선정도서 읽기모임’을 만들고,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일본 그림책 낭독모임’을 이끌고 있다.
‘시 읽는 수요일’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집 마당에서는 햇볕만 쬐어도 행복해진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김종삼 시전집’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팔레스타인 국민시인의 시를 읽는 경험이 가능했을까. 일본어로 된 영화 ‘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각본집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창작자의 질문에 독자는 끝없이 답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과 혼돈에 대해 옆으로 옆으로 이야기를 뻗어간다.
‘새벽을 여는 그림책’ 모임에서는 함께 맞이한 아침의 숫자만큼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다. 출근 준비로 바쁜 욕실의 물소리와 압력밥솥 뜸 드는 소리, 엄마를 찾는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도 화면 너머로 건너온다. 눈꼽만 뗀 부스스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내 말이 꼬투리 잡히거나 흉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안에서 우정이 싹튼다. 우정은 사회적 관계를 돈독하게 감싸고 상처 입은 마음들이 부서지지 않게 껴안을 줄 안다.
이토록 애를 써서 책모임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불안과 경쟁에 허둥지둥 쫓기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무례한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아서고, 먹고 사는 일과 돌봄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보잘것없는 일상에 아름다움 하나쯤 깃들기를 바라서다.
나이와 직업, 취향과 세계관은 물론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묻는다면, 적어도 읽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읽는 사람은 답을 구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연약하고 취약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리는 감각을 지녔다. 웅크린 말들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촉수를 세우는 이들이다. 읽는 만큼 아프지만 아픈 만큼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친구 따라 책벗들이 사는 세상을 유랑하고 있다. 지향이 맞으면 정착민이 되어볼까도 싶고, 새 집을 지어 사람들을 초대하는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오픈채팅방 ‘연두의 책소식’은 보물창고다. 박씨를 물어다주는 흥부네 제비 같다.
누군가는 팔레스타인의 인도적 위기상황에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고 ‘팔레스타인을 생각하는 밤’을 열고, 기적의도서관 20주년을 축하하며 ‘느낌표 선정도서 읽기모임’을 만들고, 자신의 재능을 나누어 ‘일본 그림책 낭독모임’을 이끌고 있다.
‘시 읽는 수요일’의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집 마당에서는 햇볕만 쬐어도 행복해진다. 이곳이 아니었다면 ‘김종삼 시전집’을 읽어볼 엄두를 내지 않았을 것이고 팔레스타인 국민시인의 시를 읽는 경험이 가능했을까. 일본어로 된 영화 ‘괴물’(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각본집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창작자의 질문에 독자는 끝없이 답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진실과 혼돈에 대해 옆으로 옆으로 이야기를 뻗어간다.
‘새벽을 여는 그림책’ 모임에서는 함께 맞이한 아침의 숫자만큼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다. 출근 준비로 바쁜 욕실의 물소리와 압력밥솥 뜸 드는 소리, 엄마를 찾는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도 화면 너머로 건너온다. 눈꼽만 뗀 부스스함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 내 말이 꼬투리 잡히거나 흉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안에서 우정이 싹튼다. 우정은 사회적 관계를 돈독하게 감싸고 상처 입은 마음들이 부서지지 않게 껴안을 줄 안다.
이토록 애를 써서 책모임을 이어가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불안과 경쟁에 허둥지둥 쫓기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아서일 것이다. 무례한 세상에 지고 싶지 않아서고, 먹고 사는 일과 돌봄노동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보잘것없는 일상에 아름다움 하나쯤 깃들기를 바라서다.
나이와 직업, 취향과 세계관은 물론 사는 곳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 그게 가능한 일인가 묻는다면, 적어도 읽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대답할 수 있다. ‘읽는 사람은 답을 구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연약하고 취약한 존재라는 걸 알아차리는 감각을 지녔다. 웅크린 말들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촉수를 세우는 이들이다. 읽는 만큼 아프지만 아픈 만큼 길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