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와 식량 주권 - 오성진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2024년 02월 20일(화) 00:00
어렸을 때 어머니가 시장에 가시면 궁금한 마음에 항상 무엇 사러 가시냐고 여쭈어 봤다. 대부분 뭐 사러 가신다고 말씀을 해주셨지만 쌀을 사러 가실 때는 ‘쌀 팔러 간다’고 대답해 주셨다. 어라? 우리 집은 농사도 짓지 않고 시골에서 쌀을 보내 주시기는 해도 먹을 쌀이지 팔 쌀은 아니기에 쌀 팔러 가신다는 말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정작 집에 오시면 팔러 가신다는 쌀이 쌀집 아저씨 자전거에 실려오는 게 아닌가.

왜 유독 쌀을 살 때만 ‘팔러 간다’라고 하시는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뒤져봐도 딱히 정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요약하자면 가난한 이웃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사용했다는 설명도 있고 쌀이 떨어졌음을 조상님께 들키지 않기 위함이라는 해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쌀이 우리의 주식이고 밥상의 주인이기에 나온 표현인 듯하다.

우리 밥상의 주인, 쌀(벼)은 일반적으로 덥고 습한 날씨와 물을 좋아한다. 사계절이 있고 여름에 강수량의 대부분이 집중되는 우리나라에서 벼를 키운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미래에는 쌀 생산량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게 되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 주최한 ‘농업전망 2024’에서 우리나라 기후가 장차 다음처럼 변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평균 기온과 연 누적 일조시간, 연 누적 일사량 평균이 증가하고 대신 연평균 강수량은 감소하는 것으로 예측하였다. 또 과수 재배면적은 감소하고 아열대작물 재배면적이 늘어날 것으로 발표했다. 예측이 맞다고 가정하면 먼 훗날 우리 후손은 인디카 계열의 쌀을 먹거나 아니면 카사바나 얌과 같은 식물을 주식으로 삼게 될지 모른다.

문제는 지금의 기후변화가 어떻게 될지 장기적 예측은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2023년 겨울에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영하 60도까지 떨어지는 북극 한파를 겪는 와중에 유럽은 따뜻한 겨울로 물난리가 났다. 우리나라도 강원도 모 지역의 겨울 축제에 얼음이 얼지 않아 관광객을 제한적으로 받아야 했으나 강원도 내 다른 지역에서는 얼음벌판에 1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오는 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한 나라 안에서도 다른 기상 상황을 겪게 되고 그리고 그 변화 양상이 단기적으로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면 많은 어려움들이 발생한다. 특히 날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농업의 경우 그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다. 작년에 수확이 잘 되었던 작목이 올해에는 잘 안 될 수도 있고 다시 내년에는 대풍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농업도 산업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어느 정도 가능해서 안정적으로 영위할 수 있어야 농업도 지속될 수 있는데 기후 변화로 인해 내일 어떻게 될지 몰라서 투자와 철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그 결과도 알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면, 농업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국민 식량 공급원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보면 ‘식량 주권’이라는 중요한 개념을 다른 나라 손에 붙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예전에는 농자 천하지대본(農者 天下之大本)이라고 했다. 현대에 와서 그 의미는 많이 퇴색되었으나 농업이 수행하는, 국가의 식량 창고 역할까지 퇴색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예견되는 상황들을 본다면 농업이 농업다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관심과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할 수 있게 적극적이고 합리적인 정책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국민은 농업의 가치를 알아 봐 주고 또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물론 기본적으로 농업인들도 국민들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농사를 지어야 할 것이다. 환경에 친화적인 농업 그리고 국민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 농업 현장을 봤을 때 마음이 치유될 수 있는 농업을 이루어 내야 한다. 그래야 기후 위기 시대에도 지속적인 농업을 통해 우리는 식량 주권이라는 중요한 열쇠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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