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의 향기] 집으로 - 김향남 수필가
2024년 02월 18일(일) 22:30
눈도 뜨지 못하고 불러도 기척이 없던 어머니가 기력을 되찾으셨다. 팔다리에 부착된 여러 장치를 떼어내고 코와 입에 연결된 관도 제거했다. 어머니의 몸은 한결 가볍고 편안해 보였다.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 끝에 하얗게 다시 피어나신 건가. 어머니의 은발이 달빛 아래 박꽃처럼 소담스러워 보였다. 엷은 미소에는 수줍음이 배어 있었다. 작아진 몸피만큼이나 여리고 순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머니가 다시 돌아오시리라고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여든을 훨씬 넘긴 고령인 데다 담당 의사도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할 만큼 위중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처음엔 가벼운 골절상인 줄만 알았다. 그러나 석 달이 넘도록 차도가 없더니 끝내 사경을 헤매는 지경에 이르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만한 일로 생사를 넘나들게 되다니. 교통사고도 아니고 방안에서 일어난 작은 사고였다. 일어나시다 그만 발이 삐끗 넘어졌던 건데 대퇴부에 금이 가고, 회복된 듯싶더니 더 나빠져 버렸다.

어머니의 병세는 누가 봐도 가망이 없어 보였다. 당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어느 날 우리를 찬찬히 바라보시더니 문득 ‘고맙다’고 하셨다. ‘고맙다’는 말은 어머니의 일상어였지만 그날은 느낌이 달랐다. 어쩐지 마지막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철렁했고, 짧고 간결한 그 한마디가 당신의 생애를 응축해 놓은 것만 같아 또다시 울컥했다. 살면서 어찌 고마운 일만 있었겠는가만 어머니는 어떤 것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않으셨다. 늘 ‘고맙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물처럼 순한 분이셨다.

우리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머니는 미리 할 말 다 해놓은 듯 깊은 잠에 빠지셨다. 우리는 기껏 조마조마하며 병실 밖을 서성거리거나 목전에 와 있는 이별의 순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뿐이었다. 어디 멀리 출타하는 것은 삼가고, 울리면 바로 받을 수 있도록 전화기는 늘 가까이에 두고 언제라도 달려갈 수 있게 대기 상태로 있는 것, 그것밖에 없었다. 어머니를 잃는다는 깊은 상실감에 저마다의 슬픔으로 더 깊이 가라앉았으려나. 그 얼마간의 시간을 빼면 거의 속수무책인 날들이었다.

그렇게 한 달쯤 흘렀을까. 기적처럼 어머니가 일어나신 것이다. 잠에서 막 깨어난 듯 말갛고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서 달빛처럼 곱게…. 어머니는 성큼성큼 놀라운 회복세를 보여 주셨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결박당한 몸에서 한결 자유로운 몸으로 나날이 좋아지시더니 마침내 일어나 걸을 수도 있게 되었다. 보조기에 의지해 한발 한발 조심스레 내딛는 걸음이었지만 그런 정도라면 곧 퇴원을 해도 무방할 듯싶었다. 당신 역시 꿈에 부풀었다. 한시바삐 집으로 돌아가 텃밭의 채소도 가꾸고 노인정에 놀러도 가고, 답답한 병실에서만큼은 어서 빨리 벗어나고 싶으셨다.

그러나 기적은 완성되지 않았다. 눈에 띄게 차도를 보이던 병세가 주춤주춤 제자리걸음을 하더니 그쯤에서 멈췄다. 보조기를 붙잡고 겨우 화장실에 다녀오는 정도가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 정도가 정점이었던 것인지 어머니의 건강은 더는 나아질 기미가 안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갈수록 요원해졌다. 누군가의 부축 없이는 일어설 수도 없는 데다 지속적인 돌봄이 필요한 형편이니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틈만 나면 ‘집으로 갈란다’하고 졸라대시던 것도 잦아들게 되었다. 혹여 집으로 돌아와도 집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당신도 아시는 거였다. 모두 아침이면 출근하고 저녁이면 돌아오는 형편이니 누구에게 의탁할 것인가. 당신의 거처는 부득이 병원이거나 요양원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결국 집으로 오시지 못했다. 그렇게 7년을 집 밖에서 지내시다 지난 겨울 돌아가셨다. 몇 번 집으로 오실 때도 있긴 했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모처럼 가족들과 함께 보냈다. 그러나 혼자서는 앉기도 서기도 어려운 분에게 집은 오히려 불편한 것이 더 많았다. 길어야 이삼일 머무는 여관처럼 어김없이 떠나야 하는 것도 마뜩잖은 일이었다. 그마저도 어려워져 영영 떠나시고 말았지만….

하얀 유골함에 담겨 납골당에 계시던 어머니가 다시 거처를 옮기셨다. 높은 하늘과 푸른 나무들이 서로 이마를 맞대고 있는 곳, 바람 소리 새 소리도 풍성하게 울리는 드넓은 공원이다. 당신 옆에는 먼저 와 계신 아버님도 계신다. 오랫동안 그리웠던 사람 옆에 나란히 누우셨으니 이제 ‘집으로’ 보내 달라는 말씀은 아니 하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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