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잉어빵과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 최현열 광주 온교회 담임목사
2024년 02월 16일(금) 00:00 가가
오늘은 출출하기도 하고 입도 심심하여 교회 근처 노점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세 군데의 노점이 있는데 벌써 몇 년 전부터 호떡을 파는 곳이 있고, 그 옆에는 올 겨울부터 붕어빵 장사를 하시는 분이 있다. 그리고 가끔 나오기는 하지만 타코야끼를 판매하는 노점이 있는데 두어 번 사 먹은 적도 있다. 그 중에 발걸음이 쉽게 향하는 곳은 바로 붕어빵 노점이다. 그런데 가끔 보면 황금잉어빵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하는 것도 보였다. 붕어빵과 잉어빵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우스운 얘기지만 어떤 글에서 ‘황금잉어빵의 정체를 밝힌다’라는 오행시를 읽은 적이 있다. ‘황금잉어빵의 정체를 밝힌다. 금인가, 잉언가, 어라, 빵이네’ 이름은 황금잉어를 가져다 붙이고 그 모양도 잉어지만 결국은 빵일 수밖에 없는 그것의 정체를 잘 나타내 주는 오행시다.
2019년 1월에 개봉하여 천만 관객을 넘어선 ‘극한직업’ 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장면 중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빵 터지게 한 대사가 있었다. 동료 경찰들이 치킨집에서 일하는 것이 마치 본인들의 직업인냥 몰두하고 있을 때 반장이 그들에게 호통을 치는 장면이 있다. 경찰의 정체성을 잊지 말라며 큰 소리를 치다가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대사에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네 수원 왕갈비 통닭입니다”라고 하며 상냥하게 전화를 받는데 그 장면에서 엄청 웃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밀리에 수사를 하고 있는 경찰들이 통닭집이 잘 되는 바람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에서도 저것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제 아무리 수원 왕갈비 양념을 첨가했다 하더라도 본질은 치킨일 수밖에 없다. 손님이 주문을 하여 종업원이 내오며 수원이라든지 왕갈비라고 말할 수 없다. ‘주문하신 치킨 나왔습니다’라고 해야 가장 어울리지 않는가 말이다.
정체성(正體性·identity)이란 사물 본디의 형체가 갖고 있는 성격을 말한다. identity란 단어가 ‘확인하다(identify)’란 말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은 정체성이 자기가 아닌 남에 의한 확인과 증명을 통해 형성되는 것임을 말해 준다. 그래서 신약성경 사도행전 11장 26절에 보면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는 말씀이 나온다. 바나바라는 사람이 다소에 있는 바울을 데리고 안디옥에 와서 일 년간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고 제자들이 생겨났다. 그때 그 제자들이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을 스스로 부른 것이 아니라 그 지역사람들이 그들을 그리 불러 주었다는 내용이다. 그들의 삶과 행동이 그리스도를 연상케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어릴 적 시골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정자나무를 지나고 있는데 어떤 분이 대뜸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이름을 말씀해 드리니 이어서 본이 어디냐고 물으셨고 나는 아버지가 평소 가르쳐 주신대로 경주 최씨 관과정공파 삼십사세손이라 대답해 드렸다. 그분은 아주 잘 배웠구나 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는데 어른이 물을 때는 최씨라 하지 말고 최가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이런 거 따지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할 테지만 내가 어릴 때는 이 물음과 대답은 상당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집안인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되었던 거 같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스스로도, 타인이 부를 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한 가지 중요한 신앙적인 요소는 누구의 소유인가가 정체성을 결정짓는다. 구약성경 이사야 43장 1절에 하나님이 야곱과 이스라엘을 가리켜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고린도전서 3장 2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라고 표현하고 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도 나타나 있다. 붕어빵이든 잉어빵이든 재료나 만드는 방식도 같고 맛도 같다. 사람은 세상에서 인종, 국가, 이름, 직업 등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를 닮은 모습에서, 그리고 예수의 소유된 존재로서 살아가야 알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
어릴 적 시골 동네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어르신들이 모여 있는 정자나무를 지나고 있는데 어떤 분이 대뜸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이름을 말씀해 드리니 이어서 본이 어디냐고 물으셨고 나는 아버지가 평소 가르쳐 주신대로 경주 최씨 관과정공파 삼십사세손이라 대답해 드렸다. 그분은 아주 잘 배웠구나 하시며 칭찬해 주셨다. 그런데 한 가지 잘못한 것이 있는데 어른이 물을 때는 최씨라 하지 말고 최가라 해야 한다고 하셨다. 지금은 이런 거 따지지도 않고 잘 알지도 못할 테지만 내가 어릴 때는 이 물음과 대답은 상당히 중요한 것들이었다. 당시에는 어떤 집안인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되었던 거 같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스스로도, 타인이 부를 때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또한 한 가지 중요한 신앙적인 요소는 누구의 소유인가가 정체성을 결정짓는다. 구약성경 이사야 43장 1절에 하나님이 야곱과 이스라엘을 가리켜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리고 신약성경에는 고린도전서 3장 23절에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라고 표현하고 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라고 베드로전서 2장 9절에서도 나타나 있다. 붕어빵이든 잉어빵이든 재료나 만드는 방식도 같고 맛도 같다. 사람은 세상에서 인종, 국가, 이름, 직업 등 다양한 모양으로 살아가지만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예수를 닮은 모습에서, 그리고 예수의 소유된 존재로서 살아가야 알 수 있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