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사파리 - 김지을 정치부 부장
2024년 02월 12일(월) 21:30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청년 당원 등 50여명이 설 연휴 직전, 연탄 2000장을 전달하며 봉사활동을 벌인 중계동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곳이다.

백사마을은 1960년대 청계천·영등포 등지에 살던 철거민들이 도심 개발로 밀려나 이주·정착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 주소인 산 104번지를 따 백사마을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백사마을로 내몰린 도시 빈민들은 산비탈을 개척해 살았는데, 오랜 기간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재개발이 안 된 채 남아있다보니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 불리게 됐다.

이런 곳에서 한 위원장이 당직자들과 웃으며 리어카를 끌고 비탈길을 오르거나 얼굴에 검댕을 묻힌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자 ‘연탄 화장’, ‘정치쇼’ 라는 공방이 설 연휴 이슈로 떠올랐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백사)마을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가난을) 파는 것처럼 보여요”, “정치인들이 다녀가면 못 사는 달동네라고 부정적으로만 보도된다”는 볼멘 소리가 들려왔다.

소외계층의 삶을 살피겠다며 쪽방촌, 재래시장을 찾아 ‘서민 코스프레’를 하는 정치인들이 잇따르는 것을 보니 선거가 임박했음을 실감한다. 달동네를 찾아 연탄을 나르거나 시장에서 건어물을 사고 ‘어묵·호떡 먹방’ 하는 정치인들의 모습은 4년 전, 2년여 전 기시감을 떠오르게 한다.

스코틀랜드 출신 래퍼 겸 작가 대런 맥가비는 ‘가난 사파리,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라는 책에서 2017년 6월 71명의 목숨을 앗아간 영국 런던 공공 임대아파트 그렌펠타워 화재사건을 언급하며 ‘사파리 투어’하듯 소비된 가난과 불평등의 서사를 지적했다. 그렌펠타워와 주변 지역은 영국에서 가장 궁핍한 지역 10% 안에 드는 낙후된 곳으로 참사 뒤 저소득층 주민들의 삶, 경제적 불평등이 집중조명됐다가 금세 잊혀졌다.

저자는 “진열창 앞 안전한 거리에서 원주민을 잠시 둘러보는 사파리가 끝나고 나면 모두가 그에 대해 서서히 잊어버리고 만다”며 구경꾼 같은 사회 태도를 꼬집었다. 제발 올해는, 사파리가 끝나더라도 그 안의 힘겨운 삶들을 잊지 않고 챙기시길.

/김지을 정치부 부장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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