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영어방송은 공공재다 - 김균수 전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24년 02월 06일(화) 00:00 가가
최근 광주시가 광주영어방송에 대해 폐지까지 포함된 구조조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매체 경쟁력 하락과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해 영어방송의 폐지, 출연금 중단 또는 축소, 매체 전환 등 다양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는데, 몇 가지 점에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영어방송은 특수방송으로 다른 매체와 경쟁을 할 이유도 또 해서도 안 되는 공공재적 성격을 갖는다. 2008년 정부가 영어전문 FM방송 설립을 추진하면서 서울, 부산, 광주 세 곳이 호응했고, 이듬해인 2009년 광주영어방송이 ‘광주·전남지역 외국인 주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내국인들의 영어교육’을 목적으로 개국했다. 가속화되는 글로벌 사회에서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방송의 필요성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무수히 난립한 미디어 환경 속 광주영어방송은 광주시민과 이주민이 함께 키워야할 독보적인 자산으로 여겨야지, 무한 경쟁의 관점에서 접근할 일이 아니다.
한국과 비슷하게 다국어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서도 1990년대 후반부터 다국어 방송이 등장했다. 도쿄에 처음 다국어 라디오 방송 ‘Inter FM’이 개국한 건 1996년으로, 외국인 거주자 수가 증가하면서 이에 발맞춰 중국어, 한국어, 인도네시아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다갈로어, 태국어 등 다국어로 시사 및 문화 소식을 다중언어(multilingual)로 전달했다.
광주영어방송 또한 우리지역에서 증가하는 중국과 베트남 유입 인구 현실을 고려해 2013년에 중국어 방송, 2017년에 베트남어 방송을 추가하며 다국어 방송 체제로 전환했다. 2021년 3월부터 한국어를 일부 사용하는 이중언어(bilingual) 프로그램도 편성 제작해 급변하는 글로벌 시대에 ‘포용과 환대의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었다.
둘째, 우리나라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이중언어, 즉 우리말과 함께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를 쓰는 학생들이 느는 추세에서 영어방송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17만여명에 이르는 이중언어 학생수에서 전남지역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교육당국 역시 이주민과 그 자녀들에 대해 그동안 수용과 동화 위주의 정책에서 개인의 성장을 위한 배려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들이 외국인 부모의 언어·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 학교나 집 안팎 어디에서도 소외되지 않고 다중 정체성을 공유하며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주의 시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주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포용정책 방향이라고 본다. 교육당국과 지자체의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부분이고,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방송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셋째, 광주영어방송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미얀마를 위한 광주행진곡’과 5·18 특집 프로그램으로 PD상을 수상했다. 국제교류 차원에서도 광주영어방송이 기획한 유튜브 동영상 ‘안쌉 광주’가 국영방송 VOV를 통해 베트남 전역에 방송된 적도 있다. 2023년 광주영어방송 평균 청취율은 5.9%로 알려졌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막강한 자본력과 스타 파워를 앞세운 지상파 방송사도 두자리 청취율을 얻기 힘든 현실과 비교해도 의미있는 수치다.
그동안 광주영어방송의 존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다. 주로 광주영어방송의 본질과는 무관한 정치공학의 발로였지, 공공기관 구조조정 이유로 흔히 언급되는 방만·부실경영에 대한 지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시는 “광주영어방송의 운영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 반면, 광주영어방송 측은 “올해 시의 지원 예산이 줄었지만 운영이 심각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엇갈리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영어방송의 공공재로서의 성격과 포용과 환대의 도시로서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광주시는 영어방송 존폐를 논하기보다 어떻게 운영난을 해소할지 지원책부터 고민하는게 상식 아닐까?
하나의 숲을 가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15년 된 광주영어방송의 존폐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 이 칼럼은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나라 학령인구는 감소하는데 이중언어, 즉 우리말과 함께 외국인 부모의 모국어를 쓰는 학생들이 느는 추세에서 영어방송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17만여명에 이르는 이중언어 학생수에서 전남지역의 비중이 높다고 한다. 교육당국 역시 이주민과 그 자녀들에 대해 그동안 수용과 동화 위주의 정책에서 개인의 성장을 위한 배려로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다문화 가정 출신 아이들이 외국인 부모의 언어·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해 학교나 집 안팎 어디에서도 소외되지 않고 다중 정체성을 공유하며 살아도 된다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주의 시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이주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포용정책 방향이라고 본다. 교육당국과 지자체의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부분이고,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방송의 역할이 커지고 있음을 직접 경험하고 있다.
셋째, 광주영어방송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주목할 만한 성과를 달성했다. 2021년과 2022년에는 각각 ‘미얀마를 위한 광주행진곡’과 5·18 특집 프로그램으로 PD상을 수상했다. 국제교류 차원에서도 광주영어방송이 기획한 유튜브 동영상 ‘안쌉 광주’가 국영방송 VOV를 통해 베트남 전역에 방송된 적도 있다. 2023년 광주영어방송 평균 청취율은 5.9%로 알려졌다. 다매체 다채널 시대에, 막강한 자본력과 스타 파워를 앞세운 지상파 방송사도 두자리 청취율을 얻기 힘든 현실과 비교해도 의미있는 수치다.
그동안 광주영어방송의 존폐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다. 주로 광주영어방송의 본질과는 무관한 정치공학의 발로였지, 공공기관 구조조정 이유로 흔히 언급되는 방만·부실경영에 대한 지적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광주시는 “광주영어방송의 운영난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한 반면, 광주영어방송 측은 “올해 시의 지원 예산이 줄었지만 운영이 심각할 정도로 힘들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엇갈리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영어방송의 공공재로서의 성격과 포용과 환대의 도시로서의 필요성을 인식한다면, 광주시는 영어방송 존폐를 논하기보다 어떻게 운영난을 해소할지 지원책부터 고민하는게 상식 아닐까?
하나의 숲을 가꾸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15년 된 광주영어방송의 존폐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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