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의 발호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4년 01월 31일(수) 21:30 가가
중국 후한 말기 외척과 내시가 권력을 양분했는데, 어린 황제들은 이들의 희생양이었다. 8살의 나이에 후한 제10대 황제에 오른 질제는 외척에게 말 한마디 했다가 재위 1년만에 독살 당했다. 대장군 양기에게 ‘그대가 발호장군’이라고 했다가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발호(跋扈)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됐다. 호는 물고기를 잡는 대나무 통발이다. 큰 물고기는 호를 뛰어넘어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데, 신하가 권세를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19세기 관료제가 도입된 이래 이에 대한 폐해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은 없었다. 올해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공화당 경선에 나선 후보들은 일제히 워싱턴 관료의 부패와 무능을 지적했고, 우리나라에서도 무사안일과 복지부동의 대명사인 관료들로 인해 국가의 존폐가 걸린 중차대한 현안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근간인 삼권분립 제도는 관료제의 기반 하에 작동한다. 입법부는 선출직으로 구성해 법·제도를 제정하고, 행정부는 선출직인 대통령이 수반이 돼 직업 공무원들을 이끌며 행정서비스를 제공한다. 사법부는 최종적인 판단을 맡는 시스템이다.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정부의 권한이 상대적으로 비대할 수밖에 없는데, 그 수준은 대통령과 그가 임명하는 고위직들의 철학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정부의 정책들을 보고 있자니 가관이다. 서민, 지방, 약자, 미래 등은 안중에도 없고 업자, 수도권, 부유층, 기득권층을 위한 ‘맞춤형’ 조치만이 이어지고 있다. 오늘만 살고 보겠다는 안일함, 미래 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는 무책임함으로 점철된 이러한 정책의 출처는 태생적으로 혁신과 개혁을 거부할 수밖에 없는 관료 집단일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백년대계를 짜고, 약자를 보듬어 균형을 잡아주는 국가 운영의 원칙과 기준, 윤리와 규범, 철학과 당위 등을 찾아볼 수 없는 엉터리 시장 논리가 국정을 장악해버렸다. 관료의 발호를 견제하고, 선출직의 능력과 철학을 더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법·제도가 절실하다.
/chadol@kwangju.co.kr
미래를 내다보며 백년대계를 짜고, 약자를 보듬어 균형을 잡아주는 국가 운영의 원칙과 기준, 윤리와 규범, 철학과 당위 등을 찾아볼 수 없는 엉터리 시장 논리가 국정을 장악해버렸다. 관료의 발호를 견제하고, 선출직의 능력과 철학을 더 철저히 검증할 수 있는 법·제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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