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애도사를 예약받다-이중섭 소설가
2024년 01월 30일(화) 21:30
아내가 돌아왔다. 밤 열두 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베트남 다낭 여행을 간 지 나흘만이었다. 아내는 여행도 좋았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 최고라며 환하게 웃었다.

아내가 없는 동안 여러 일이 일어났다. 가게 형광등 교체, 재고와 주문서 정리 그리고 변동 가격으로 조정했다. 아침저녁으로 정신발달 장애인 딸의 식사를 준비해야 했다. 나이 때문인지 몸과 정신이 함께 느려지면서 체력에 달리고 시간에 쪼들렸다. 그런 중에 시골 친구가 다른 세상으로 떠났다.

식사 중에도 아내는 계속 여행 이야기를 했다.

“다낭이 그렇게 좋을 줄 몰랐어. 나중에 아들과 둘이 다녀와요. 다린이는 내가 볼 테니까. 근데 그 시골 친구는 왜 그런 거야?”

죽은 친구는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같이 다녔다. 날씨가 엄청 추운 날에 술 한잔 마시고 사무실 소파에서 자다가 일이 벌어졌다. 심한 추위에 오래된 석유 난로를 피웠다. 밀폐된 사무실에 환풍이 제대로 되지 않아 질식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제 예순을 갓 넘었다. 누적된 피곤 때문에 식사하면서도 눈꺼풀이 무거웠다.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에서의 여파가 여전히 몸과 마음을 짓눌렀다.

“새로 들어온 물건 정리하느라 엄청 바쁜데 국악인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어. 애도사 좀 준비하라고.”

조금 망설였다. 사실 애도사는 몇 글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집중해야 하는데 그때 몸과 정신이 너무 산만했다. 가장 주저한 이유는 따로 있었지만 그러자고 했다. 저녁 7시에 만나자며 통화를 마쳤다. 겨우겨우 한 장의 애도사를 썼다.

장례식장에는 친구들이 한 삼십 명 와 있었다. 조문객들이 조금 한가할 시간에 영정 앞에 상주들과 친구들이 빙 둘러섰다. 진행에 따라 내가 맨 처음 애도사를 읽었다. 다들 침울했다. 읽는 나도 먹먹했다. 다음으로 국악인 친구가 준비해 온 요령을 흔들며 저음으로 앞소리를 메겼다.

“가요 가요, 나는 가요. 친구들 두고, 나는 가요.”

빙 둘러선 친구들이 낮고 조용하게 이어받았다.

“어화 너어~ 어화 너어~, 어너리 넘차~ 어화 너엄~”

상여가 나갈 때 상여꾼들이 하는 뒷소리다. 상엿소리에 주위 조문객들이 스마트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국악인 친구가 요령을 흔들며 계속해서 앞소리를 메겼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우리 친구 복기야! 너도 가고 우리도 간다, 어화 너엄.”

“어화 너어~ 어화 너어~, 어너리 넘차~ 어화 너엄~”

애도식을 마치자, 맏상제인 아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아버지가 왜 친구들을 그렇게 좋아했는지 알겠다며 주억거렸다. 진행하던 친구가 오더니 조용히 소곤거렸다.

“아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올 뻔했네.”

다들 장례식장 밖으로 나갔다. 쌀쌀한 밤하늘에 조금씩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술을 깨려 기지개를 켜는데 한 친구가 다가왔다. 술을 많이 마셨는지 얼굴이 붉었다. 이제 우리 나이에 젊은 얼굴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친구, 고맙네. 자네 애도사 때문에 죽은 친구가 고마워할 거네. 근데….”

“근데?”

“나중에 나도 죽으면 멋진 애도사 좀 써 주소!”

나는 뭐, 이런 녀석이 다 있나? 하며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는 겸연쩍은지 씩, 웃으며 담배 한 모금을 연기로 날려 보냈다.

“얌마! 앞으로 잘 살 생각이나 해! 내가 이럴 거 같아서 애도사를 안 쓰려고 했어!”

가장 우려하던 일이었다. 주저한 이유가 애도사를 예약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앞으로 애도사를 전담해야 하나? 하는 부담감마저 들었다. 그날 밤 장례식장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니 아내가 막 웃었다.

“친구들 애도사 다 써주고 맨 나중에 죽으면 되겠네. 가장 오래 사니 좋잖아?”

나는 멍하니 아내를 쳐다봤다. 아내의 얼굴에는 아직도 여행의 즐거움이 생글생글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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