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필과 함께하는 영화산책] 더 도어: 다섯 개의 문
2024년 01월 29일(월) 12:20
<4>폐문 앞에 멈춰 선 닫힌 마음과 미지에의 공포

챕터3 ‘당신의 고통’은 술에 취한 전남편이 닫힌 문을 두드리며 찾아와 협박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상공 1만 미터를 순항하던 비행기 하나가 지상으로 곤두박질친다. 기장이 잠시 밖에 나와 있던 사이 부기장이 조종석을 탈취한 것이다. 인질로 잡힌 승객들은 패닉에 휩싸인다.

#폐건물 속으로 숨어든 범인을 쫓아 들어간 경찰. 미로 같은 컨테이너 안에는 수많은 문이 있고, 불법 체류자들은 깊은 곳으로 달아난다.

#무장 강도들이 침입하자 한 억만장자는 와인이 가득한 창고 문을 걸어 잠그고 안에 숨는다. 문득 밖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위 이야기들의 교집합은 어디에 있을까. 다름 아닌 ‘문’이다.

문은 어쩌면 실견할 수 없는 미지의 공포를 차단하기 위해 발명된 것인지 모른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면에서 그러하듯 안팎의 구분이 주는 안도감은 불안을 희석해주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가끔 문은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무화시킨다. 정의하는 존재나 방식에 따라 어느 쪽이라도 ‘안’이나 ‘밖’이 될 수 있다는 논리는 자못 섬뜩하다.

지난해 개봉한 뒤 현재 티빙, 왓챠, 쿠팡플레이, 웨이브 등 OTT 플랫폼에서 상영 중인 ‘더 도어: 다섯 개의 문’은 비탈리 두드카 등 러시아 감독들이 공동 제작한 옴니버스 공포물이다.

미리 언급하자면 모든 에피소드에서 문은 결국 열리거나 닫힐 뿐이다. 그러나 이처럼 직선적인 플롯은 마초스럽게 다가와 괴기스럽다.

‘당신의 비상구’에서 비행기 기장과 바람을 핀 승무원.
첫 번째 이야기 ‘당신의 몸값’은 닫힌 와인창고의 문을 클로즈업하며 시작한다.

초고가 와인을 보관하는 가내 창고에 여인을 데려온 억만장자 파벨은 술을 마시던 도중 들이닥친 강도들에게 창고 문을 열라는 협박을 받는다. 철문을 닫고 버티던 중에 밖에서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파벨은 딜레마 속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이런 포맷은 이미 성공사례가 많다. 불상의 존재가 원초적 공포를 주는 ‘인시디어스 빨간 문’ 등이 그 일례, 다만 ‘당신의 몸값’은 이를 적정선에서 답습하며 날 선 이중 반전의 묘를 선사한다. 결말에서 문은 열리고 여인과 강도, 아들이 한 패였다는 사실이 드러나 일순 당혹스러웠으나 또 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어 안심해도 좋다.

작품은 압축적인 5분 속에 기승전결을 욱여넣으며 기존 공포물이 취하는 전략들을 일부 소거시켰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관객들을 놀라게 하는 ‘점프 스케어(갑툭튀)’나 소위 ‘유전’류 공포영화가 취하던 서사적 공포, ‘미드소마’ 풍 오브제의 활용 등에 크게 기대지 않았음에도 흡인력이 있다.

챕터5 ‘당신의 선택’에서 잠긴 문을 열어달라는 엄마와 이를 외면하는 아이
‘이야기 넷: 당신의 비상구’은 다섯 단편 중 대표작으로 꼽을 만 하다. 이번에 닫힌 문은 비행기 조종석으로 향하는 두꺼운 철문.

부기장은 플레이보이인 기장과 자신의 애인인 여승무원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탑승객을 볼모로 협박을 시작한다. 그는 두 사람이 승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애정행위를 해야만 비행기 고도를 정상으로 올리겠다고 방송한다. 처음에는 이성적 해결책을 강구하던 정신과 의사마저도 죽음이라는 공포 앞에서 침묵하는 등, 작중 ‘이성’은 단말마의 공포에 쉽게 함락당한다.

닫혀있던 것은 조종석 문이 아니라 비도덕적 행위에 상처받은 부기장의 마음의 문이라는 점이야말로 기실 가장 큰 공포 요소다. 성적 욕구와 관련해 선을 넘어버린 승객들의 주이상스적 쾌락 또한 ‘닫힌 문’의 일종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폐문들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결국 누군가로부터 문은 열렸지만 조종석에서 안전벨트를 동여맬 것을 당부하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며 작품은 종국으로 향한다. 안전지대는 없었다.

억만장자 파벨은 갑자기 들이닥친 강도들을 피해 와인창고의 문을 걸어 잠그고 농성한다.
마지막 단편 ‘당신의 선택’은 꽤나 공들인 미장센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작품이었다.

아름다운 여인은 자신을 엄마라고 주장하며 집 안 곳곳에서 아이와 놀아준다. 문밖에서는 자신이 진짜 엄마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집 안 여인은 아이에게 여러 환상들을 보여준다. 수상하지만 여인은 숨바꼭질도 요리도 함께 해주며 아이를 즐겁게 만든다. 문을 열어야 할까?

아이를 보며 그리스 신화 속 판도라가 쉽게 연상된다. 판도라의 상자에서 질병, 절망 등이 흘러나왔다는 사실이야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급하게 닫은 상자 밑바닥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는 것은 비교적 알려지지 않았다.

아이가 문을 열기까지는 판도라처럼 불안, 의심 등 많은 고통이 뒤따랐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수렴하는 자폐적 걸쇠를 열고, 아이는 ‘진짜 희망’을 목도한다.

‘더 도어’는 기존 공포물의 질서에 편입하면서 옴니버스와 문이라는 요소를 접목, ‘ABC 오브 데스’나 ‘V/H/S 시리즈’ 같은 옴니버스 공포물들의 아성을 철학적으로 계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각각의 단편들은 문이 열린 뒤 “짠 괴물이야”를 고수하던 호러물의 도식적 메커니즘을 벗어나, 여닫힌 세계 양면을 정신적으로 가학하는 방식으로 근원적 공포를 선사한다.

근원적 공포를 고작 폐문 하나로 투시하는, 영화 ‘더 도어’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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