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의 기술 - 유제관 편집담당1국장
2024년 01월 26일(금) 00:00
경제는 끝없이 추락하고 정치는 한없이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지금은 철학의 위로가 필요한 시간. 폭설과 한파가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서점가에는 쇼펜하우어 열풍이 뜨겁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남에게 보여주려고 인생을 낭비하지 마라’ ‘쇼펜하우어 아포리즘-당신의 인생이 왜 힘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등 관련 책들이 한꺼번에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라 있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1788년 독일의 부유한 사업가 아버지와 유명한 작가 어머니 사이에 ‘금수저’로 태어났다. 그러나 사춘기 시절에 아버지는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하고 어머니가 사교계에 진출하자 가업 승계를 포기하고 학문으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30대에 베를린대학에서 강의할 만큼 촉망받는 학자였다. 하지만 그곳에는 당대 최고의 철학자인 헤겔이 있었다. 첫 강의부터 강의실이 텅 빈 참담한 현실을 맞이하자 학계를 떠나 은둔의 삶을 산다.

쇼펜하우어가 유명해진 것은 40대 중반에서부터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바탕으로 지혜와 처세술을 정리한 수필집 ‘소품과 부록’이 뜻밖에 인기를 끌었다. 이 책은 ‘행복론과 인생론’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그는 인생의 의미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수많은 명언을 남겨 60대엔 철학자로 학계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고 70세 생일에는 전 세계에서 축하 편지를 받을 만큼 명성을 떨쳤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눈여겨봐야 할 책도 있다. ‘논쟁에서 이기는 38가지 방법’이다. 여기에는 “뻔뻔해져라.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라, 거짓 추론과 왜곡을 통해 억지 결론을 끌어내라, 인신공격을 하라” 등 막장 싸움 기술들이 들어있다. 왜 이런 책을 썼을까?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주장하려는 속성을 타고났다”고 말한다. 이 책은 상대가 비겁한 방법을 썼을 때 휘말리지 않는 법을 역설적으로 알려준다. 그렇다면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을까? 못 볼 걱정은 안 해도 된다. 22대 총선이 7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정당별 후보가 선출되고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 전국 방방곡곡에서 유세차량을 타고 나타날 것이다.

/jk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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