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시간을 붙잡다 - 한근우 한국폴리텍대학 전남캠퍼스 교수
2024년 01월 26일(금) 00:00
시간의 시작점을 ‘빅뱅(Big Bang)’이후로 가정한다면, 드넓은 우주의 작은 한 점 행성 지구 속 우리도 논스톱으로 달리는 시간이라는 열차에 탑승한 승객이다. 시간이라는 열차는 멈출 수 있는 제동장치가 존재하기 않기에 우리가 시간을 거스르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하다. 혹여 SF 영화 속 ‘스트레인지 박사’는 본인의 의지에 따라 시간을 손쉽게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지만, 현실 속 세계에서는 0.0000000000000퍼센트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는 실정이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은 유치원생도 아는 자명한 사실이지만, 우리 인간은 적어도 일말의 시간이라도 잡고자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 결과 초기 인류는 동굴의 사냥 벽화로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시간의 일부분을 재단해 벽화로 남겼을 것이다. 이후 재단된 시간은 활자로 문서가 되어 기록되기도 했다. 혹은 새하얀 캔버스를 바탕으로 알록달록 한 물감으로 사실감 있게 채색된 채 시간을 사로잡기도 한다. 현대에 와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간을 저장하는 행위는 소리, 음성, 노래 따위를 녹음하거나 사진, 동영상 등의 영상 매체로 보다 진보된 행태로 시간을 사로잡게 되었다.

이 중에서 사진 만큼이나 인간의 시간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매체가 또 있을까? 한 장의 사진은 정적이고 제한적인 시간을 사로잡는 매체이지만, 우리는 인생에 있어 늘 사진으로 그 시간을 간직하고 싶어 한다. 어느새 칠순이 훌쩍 넘어버린 부모님 댁에 가보면 거실과 안방에는 다양한 사진이 걸려 있다. 비교적 최근 부모님 사진도 있지만 그 중에서 지금의 필자 보다 더 젊디 젊은 모습의 부모님과 한창이나 어린 필자와 누나들의 웃음 가득한 가족사진이 눈에 띈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어린 시절로 돌아가 지금보다 한창이나 젊은 부모님과 맘껏 뛰놀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손안에는 카메라를 하나쯤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동네 사진관은 찾는다. 그곳에서 어머니의 자궁을 벗어나 세상과 조우한지 100일 쯤 카메라 앞에서 처음으로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또,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들은 자신을 알리기 위한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와 마주했다. 카메라가 탄생하고 보급된 이래 우리들의 소소한 일상들을 한 장의 사진으로 기록해 남길 수 있게 되었다. 이외에도 사진은 개인의 행복한 일상을 넘어서 저널리즘의 도구로도 그 존재의 가치를 증명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그렇게 우리가 다양한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의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스마트폰만으로도 쉽게 사진을 찍거나 공유가 가능하게 되었다. 공유된 사진은 스마트폰이라는 하드웨어의 한정된 저장공간에만 보관된 것이 아니라 SNS(Social Network Service)라는 거대한 네트워크 공간에 실시간 업로드 되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과거 어느 때 보다 사진은 넘쳐나지만, 그 사진이 출력되어 집안 벽 어느 곳에 걸려지는 것은 오히려 줄어든 듯하다(필자의 집에만 봐도 벽에 사진이 없다). 이렇듯 사진은 우리들의 좋거나 혹은 나쁜 기억에 시간들을 매순간 오려내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쉬운 대로 우리는 시간의 찰나(刹那)를 건지는 행운은 얻게 된 것이다.

시간의 흐름과 사진이 만나면 우리는 과거로 여행뿐만 아니라 현재의 순간을 간직할 수 있다. 아마도 미래의 우리에게 남길 소중한 기록들은 오늘의 작은 사진 하나하나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언제나 손안에서 시간을 간직할 수 있고, 그 간직된 순간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준다. 그러므로 오늘도 우리는 시간의 열차에 탑승한 승객으로, 사진을 통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며 여행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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