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를 닮은 우리 동네 큰언니들 - 김미승 작가
2024년 01월 22일(월) 22:00
지난해 5월쯤 광주 동구청의 ‘우리 동네 큰언니’ 여성 기록화 사업에 참여하게 되었다. 동구의 13개 동에서 한 명씩 추천된 ‘큰언니’들의 삶을 미니 자서전 형식으로 쓰는 일이었다. 경험에 비추어 보면 자서전이란 대체로 한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이거나, 사회적으로 존경받을만한 행적을 기록하는 장르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 큰언니’로 추천된 열 세분은 성공의 신화를 이룬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 늘 보아온 친정엄마 같고 큰언니 같은 분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부담이 되지 않고 오히려 친근감이 들었다. 게다가 ‘큰언니’라는 타이틀이 주는 느낌도 좋았다. 남자가 주류인 세상의 구조에서 조금 벗어난 느낌이 들었다.

어렸을 때 들었던 ‘딸은 재산 밑천’이란 말이 생각난다. 지금이야 그런 말을 쓰지 않지만, 그땐 심심찮게 들었다. 어린 나는 그 말이 좋은 뜻인 줄 알았다. 늘 넉넉지 못한 생활이라 ‘재산 밑천’이라는 말이 왠지 희망차게 들렸었다. 그러나 자라면서 그 말 속에 몹시 나쁜 의도가 숨어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들과 딸, 남자와 여자, 그리고 강자와 약자라는 차별이 내포된 말이란 걸. 언제든 재산 밑천으로 둔갑할 수 있는 여자들의 운명은 역사속에서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도 심심찮게 드러나곤 했다. 가정에서 딸들은 교육의 기회를 아들들에게 양보해야 했고, 오빠를 위해 공장에서 일해야 했다. 결혼 후엔 육아를 위해 직장을 버려야 했다.

열 세분의 큰언니들을 인터뷰하면서 실감했다. 딸이라서 끝없이 양보하고, 물러났다는 것을. 그러나 그녀들은 미워하거나 분노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시대가 씌운 굴레에 어쩔 수 없었다는 자포자기의 표정이 아니었다. 어떤 자긍심이 그녀들의 가슴에 심지처럼 박혀있는 듯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그 답은 한 분 한 분의 삶의 이야기를 원고로 정리하면서 알게 되었다.

70세 이상 80대 중반 연세의 열 세분의 큰언니들은 커다란 느티나무를 닮았다. 그녀들은 늘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아왔다. 잡아줘야 할 아픈 손은 없는지, 궂은일은 외면하지 못해 참견하고, 조금 불편해도 내 공간을 내주며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느라 손해와 이익을 따질 겨를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들은 느티나무를 닮아갔다.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세상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 안에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었다. 세상의 모든 여자에겐 그런 품을 만드는 유전자라도 들어있는 것일까. 문득 앞만 보고 달려온 키만 겅증한 내 삶이 빈궁하게 느껴졌다.

처음 인터뷰 약속을 잡을 땐 자격이 없다며 한사코 빼던 분들이 막상 인터뷰를 시작하면 기다렸다는 듯 술술술 이야기가 풀어냈다. 당연했다. 그녀들의 삶이 곧 이야기였으니까. 그녀들의 돌봄의 습관은 여러 형태로 나타났다. 부모를 잃고 오갈 데 없는 아기를 조건 없는 사랑으로 30년을 키워낸 큰언니, 다른 이들의 출근길이 불쾌할까 아침 일찍 나와 골목을 청소하는 큰언니, 예쁜 꽃과 차를 나누며 동네에 향기로운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큰언니, 넘치는 동네 사랑을 시로 읊어내는 큰언니 등. 남을 위한 봉사를 삼시 세끼처럼 챙겨온 큰언니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마음이 넉넉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정겨운 말투와 넘치는 오지랖에 나도 모르게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귀중한 체험이었다.

늦은 봄에 기획해서 무더운 여름날에 구술채록을 하고, 가을에 원고를 마무리 지었다. 정성 들여 쓴 원고가 출판이라는 옷을 입으니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우리 동네 큰언니’가 세상에 나온 것을 축하하기 위한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동구청의 정성스러운 준비와 한껏 멋을 부린 ‘큰언니’들의 수다가 풍성하게 차려졌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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