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
2024년 01월 21일(일) 22:00
에이미는 성공한 사업가로 외견상 남부러울 게 없는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만족스럽지도 평온하지도 않다.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가장 역할을 하지만 늘 딸을 챙기지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에 짓눌린다. 또 다른 인물인 도급업자 대니는 녹록지 않은 현실에 지쳐 있다. 어느 날 에이미와 대니는 할인마트에서 주차문제로 시비가 붙는다. 사소한 다툼은 이내 보복운전으로 치닫게 되는데, 두 인물의 내면에 잠재된 분노는 그렇게 불씨가 되고 만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시상식에서 8관왕을 차지했다. 드라마는 작품상을 비롯해 감독상, 각본상, 남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을 휩쓸었다. 특히 한국계 연출가, 작가, 배우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작품이 에미상 주요 부문을 거머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작가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이성진은 수상 소감에서 ‘처음 미국에 왔을 때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일 정도로 힘든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봉준호 감독이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석권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본명을 쓰기로 했다고 밝혔다. 남우주연상을 받은 스티븐 연은 2020년 영화 ‘미나리’에서 이민자의 삶을 시작하는 인물을 연기해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는 한국계 배우로는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연기력을 입증한 바 있다.

‘성난 사람들’의 쾌거는 한국계, 특히 한국 문화예술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드라마에서 마주하는 ‘한국적인 모습’, 일테면 간식으로 등장하는 라면이나 영상 통화 등은 우리의 일상처럼 친숙하다. 그러나 사소한 시비가 보복운전으로 비화되는 일련의 서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시한폭탄의 사회’로 변모해버렸다. 정치적 노선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테러를 가하고, 선거와 관련해 낙인찍기도 횡행하고 있다.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한국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렸다는 사실만 주목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사소한 주차 시비를 모티브로 작품이 탄생했다는 점도 상기했으면 한다. 주위에 ‘성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박성천 문화부장·편집국 부국장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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