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카르텔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4년 01월 17일(수) 22:00 가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면서 던진 공약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집권하면 ‘반값 아파트’를 공급해 명실공히 의식주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한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기반시설 설치 비용을 일부 국가 재정으로 충당하고, 건축비와 택지비의 거품을 빼겠다고 한 것이다. 획기적인 공약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주장과 근거는 분양가가 30여년 만에 10배 가까이 폭등한 지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결혼을 안 한다고, 출산을 회피한다고 난리다. 통계청이 2023년 사회조사에서 MZ세대가 왜 결혼을 하지 못하는지를 살펴봤다. “주거 마련, 혼수 비용이 부담돼서”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그 중에서도 주거 마련은 넘지 못할 벽이 되고 있다. 영혼까지 끌어모아도 살 수 없는 아파트, 수시로 전세 사기가 횡행하는 오피스텔·빌라, 사람이 거주할 수 없을 정도로 노후한 단독주택 등을 보고 있자면 누구라도 가정을 꾸릴 엄두가 나지 않을 것 같다.
이 판국에 정부는 출산 가구에 최장 15년간 특례 금리로 5억원을 빌려주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5억원의 이자와 원금을 갚으며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정부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데 있다. 서민이 아닌 건설업체, 금융기관을 위한 대책인 셈이다. 이런 사이 아파트 가격은 날로 오르고 있다. 한 부동산업체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아파트 분양가는 평당 평균 1801만원으로 전년 대비 약 280만원 올랐다. 18.4%의 상승률로 2000년 이래 2003년(19.9%)과 2007년(23.3%)에 이은 역대 세 번째이자 16년 만의 최고 기록이다. 과자, 라면 가격이 5%만 올라도 호들갑인 정부는 분양가를 낮추기 위한 노력이나 시도조차 없다.
정부는 분양가 내역을 공개하게 하고, 분양가를 낮추기 위한 전방위 노력에 나서라. 국토교통부가 건설·개발업계, 투기세력, 금융기관 등과 한통속이 아니라면 국민 주거복지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구상하라. ‘아파트 카르텔’을 혁파해 반값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는, 능력있는 정치인은 없는 것인가. 개탄스럽다.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