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지연순 건축가·문화기획자
2024년 01월 17일(수) 00:00 가가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의 ‘땅의 도시, 땅의 건축’, 서울 시립미술관의 ‘80 도시현실’ 등 도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던 지난해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의 ‘셋방살이와 내 집 마련: 춘천 주택 변천사’전에 협업 큐레이터로 참여했다.
1950년 한국전쟁으로부터 1989년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춘천의 주택 변천사를 다룬 전시는 ‘전후 복구와 집단 이주 주택’, ‘새마을운동과 주택’, ‘도시 주택의 변화’, ‘서민의 꿈, 아파트’ 등으로 구성됐다. 나는 5부 ‘집의 시간’을 맡아 우리 가족이 셋방살이했던 집, 아버지가 처음 구입한 공용주택,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집을 포함해 지인의 집 27곳의 건축 도면, 사진,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강원도 춘천에서 유년기를,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 이후 광주에서 살게 되었다. 세 개의 도시를 경험하면서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수 많은 집들을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이 고개를 든 것은 2016년에 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다.
구도심으로 불리는 아시아문화전당 주변의 남동1번지, 동명동, 산수동, 대인동, 중흥동 일대의 빈집들과 지붕이 허물어져가는 도심형 기와집들, 옹색하게 수선된 채 쓰러져가는 집들을 볼 때마다 소박하고 정겨운 풍경과는 멀어져가는 현상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주인이 떠난 수많은 집들과 골목길 주변에서 도시의 흔적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만 커져 갔다.
여러 지역의 도시 생태계를 관찰하던 중, 10년 동안 빈집 상태로 방치돼 있던 남동 91번지 주인의 아카이브를 선보였던 ‘나의 살던 고향은: 송씨 할아버지댁’ 가정방문 전시 프로젝트는 도심의 변화 속에서 사라져가는 주택의 기록을 담아보려고 시도한 첫 번째 공간 전시기획이었다. 2017년 남동 91번지 두번째 전시인 ‘무인지대’( A Zone, No One) 손현주 작가 초대 사진전은 일본 나오시마의 집(家, ie이에) 프로젝트를 방문한 이후에 기획했다. 안도 다다오의 기획아래 건축과 예술이 어우러져 지역의 정체성과 역사성을 보여주는 문화적인 시도가 인상 깊었다.
광주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건축적 맥락의 전시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마음에서 준비했다. 남동 91번지 주택은 2016년과 2017년 전시를 마무리한 이후 2018년 멸실,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기와집, 그곳의 기억들을 나누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최근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오랜 시간 자연과 삶을 담아내었던 집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는지 궁금해진다.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 표시가 된 거리를 지나치며 변화된 건축적 지층들을 사진으로 남겨보기도 하지만, 수많은 세월 속에 건축되고 사라져간 주택의 역사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현재도 철거를 기다리는 건물들을 볼 때 마다 시대적인 문화를 담았던 건축적 자산들을 그대로 철거해도 되는 것인지, 무차별적인 철거 이후 사라져버린 기억 속에서 도시의 역사적 근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사후약방문(死後藥房文)이 될까 봐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춘천 전시 ‘집의 시간’을 위해 수집한 자료들을 되돌아보면서 전남에 위치한 광주의 주거문화 자료를 발굴하여 정리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보편적인 탐구를 통해 역사적 시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풍토와 자연 속에서 순응하거나 저항한 생활공간의 흔적들을 여과 없이 살필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된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떠오른다. 넓은 마당이 있는 기와집, 언덕 위 작은 집 등 개성과 서울의 대비된 삶의 터전들. 우리들 기억 저편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개별적인 희로애락과 경제발전이라는 공허 속에 가려진 동시대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공간의 기록은 우리의 언어이며 자산이 될 것이다. 역사는 평범한 시민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강원도 춘천에서 유년기를, 서울에서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 이후 광주에서 살게 되었다. 세 개의 도시를 경험하면서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머물러 있던 수 많은 집들을 기록해야겠다는 결심이 고개를 든 것은 2016년에 논문을 준비하면서부터다.
광주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는 건축적 맥락의 전시가 필요하다는 절실한 마음에서 준비했다. 남동 91번지 주택은 2016년과 2017년 전시를 마무리한 이후 2018년 멸실, 현재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지금도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커다란 은행나무와 기와집, 그곳의 기억들을 나누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최근 재개발 지역의 아파트가 모습을 드러내는 가운데, 오랜 시간 자연과 삶을 담아내었던 집들이 기록으로 남아있는지 궁금해진다.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 표시가 된 거리를 지나치며 변화된 건축적 지층들을 사진으로 남겨보기도 하지만, 수많은 세월 속에 건축되고 사라져간 주택의 역사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온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현재도 철거를 기다리는 건물들을 볼 때 마다 시대적인 문화를 담았던 건축적 자산들을 그대로 철거해도 되는 것인지, 무차별적인 철거 이후 사라져버린 기억 속에서 도시의 역사적 근거를 되찾을 수 있을지, 사후약방문(死後藥房文)이 될까 봐 조급한 마음이 앞선다.
춘천 전시 ‘집의 시간’을 위해 수집한 자료들을 되돌아보면서 전남에 위치한 광주의 주거문화 자료를 발굴하여 정리해볼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보편적인 탐구를 통해 역사적 시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도시 생태계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풍토와 자연 속에서 순응하거나 저항한 생활공간의 흔적들을 여과 없이 살필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1930년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는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된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가 떠오른다. 넓은 마당이 있는 기와집, 언덕 위 작은 집 등 개성과 서울의 대비된 삶의 터전들. 우리들 기억 저편의 모습을 상상해보게 된다.
개별적인 희로애락과 경제발전이라는 공허 속에 가려진 동시대의 물리적이고 정서적인 공간의 기록은 우리의 언어이며 자산이 될 것이다. 역사는 평범한 시민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