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을 꿈꾸며 - 박용수 수필가·동신여고 교사
2024년 01월 15일(월) 00:00 가가
“인생은 미완성, 그래도 우리는~ 곱게 살아야해~”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다. 편안한 노래, 좋은 노래는 저절로 나온다. 누구나 멋진 인생을 꿈꾼다. 화가는 그림으로, 교수는 학문으로, 농부는 결실로, 어민은 만선으로, 떠돌이는 정착으로, 삶의 허기를 포만 가득 꿈꾸며 마음껏 웃어보고자 한다. 그런데 현실은 늘 노래의 결말처럼 미완성이다.
예전 일이다. 친구 결혼식 하객으로 갔다가 그를 만났다. 근 30년 만의 일이었다. 식이 진행되는 중인데 난 누가 내 등을 꼭 껴안는 걸 느꼈다. 젊은 사람의 온기가 등을 통해 가슴으로 따뜻하게 다가왔다. 뒤를 돌아보고 그가 누군지 금방 알아보았다.
신출내기 교사시절, 우리 반 아이였다. 3학년 2학기, 기껏 4개월 뒤에는 졸업할 때였다. 녀석은 자꾸 결석을 했고, 그때마다 난 교장실로 불려갔다. 왜 장기 결석자를 퇴학시키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던 때였다. 3일 결석이면 출석 촉구서를 보내야 했고 3번 반복하면 퇴학을 시키던 때였다. 지금과 달리 학생이 넘쳐났던 시절, 그날도 교장 선생님은 녀석이 사고를 쳐서 만약 뉴스라도 나오면 학교 명예를 어찌할 것이냐며 목에 핏대를 세우셨다.
녀석 자취방엔 온기가 없었다. 아궁이까지 썰렁했다. 내가 나오자 놀이터에서 검은 그림자가 휙 담을 넘었다. 직감으로 녀석인 줄 알았지만, 이지저리 피하는 녀석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의 아버지는 시골에서 소를 키우고 있었다. 이미 부자지간 간극은 냉랭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 전에 새 엄마가 들어왔으니, 새 엄마에 대한 거부감 못지않게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으로 가득 찬 녀석의 마음은 거친 풍랑이 세차게 일고 있었다.
시골에서 유학을 보냈지만 그때 그에게 졸업장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행복하게 다니는 다른 친구들로 인해 상처만 커질 뿐이었다. 결국 새 엄마가 사는 고향집을 등지고 학교도 등졌다.
땅도 메말라야 물이 필요하고 잘 흡수하는 법, 축축한 땅은 그대로 물을 흘러 보내듯 녀석은 어떤 충고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토해냈다. 절망과 분노가 그를 칭칭 옭아맨 듯 했다.
재혼이 흔치 않은 때였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에 새 엄마의 이른 출현은 녀석이 넘기 버거운 고개였다. 장기간 누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재혼한 아비 역시 40대 중반, 부모지만 아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일을 서두른 측면도 없지 않았다.
태풍이 불면 나뭇가지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담이 무너지고 집이 넘어간다. 해일은 마을을 덮친다. 인간의 내면에 이는 심화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다행히 녀석은 어느 일터에서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부모가 되었다. 여자의 설득으로 아버지와 화합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부모님 옆에 집을 짓고 같이 축사 일을 하고 있단다. 잃어버린 사랑을 사랑으로 되찾은 것이다.
친구와 재혼한 사람은 그의 사촌 누나였다. 그녀 역시 재혼이었다. 결혼은 완성 같은데 역시 미완성이었다. 사랑을 동사, 진행형이라는데, 인생도 마찬가지 완성이 없어 보인다.
두 번째 결혼한 친구나 그의 아버지나 그리고 그나 모두 생의 완성을 위해 나름의 길을 가고 있다. 사는 방법도 사랑하는 법도 각기 다르다. 그 누구도 실패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멋지고 빛나게 자기 인생 지도를 그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인생은 여전히 깊고 심오하다. 무엇보다 완성을 향해 열심히 나아갈 뿐, 미완성이다. 최선을 다해 좋은 방향으로 나를 들여놓아야 한다. 혼자 흥얼거린다.
“인생은 미완성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
자주 흥얼거리는 노래다. 편안한 노래, 좋은 노래는 저절로 나온다. 누구나 멋진 인생을 꿈꾼다. 화가는 그림으로, 교수는 학문으로, 농부는 결실로, 어민은 만선으로, 떠돌이는 정착으로, 삶의 허기를 포만 가득 꿈꾸며 마음껏 웃어보고자 한다. 그런데 현실은 늘 노래의 결말처럼 미완성이다.
신출내기 교사시절, 우리 반 아이였다. 3학년 2학기, 기껏 4개월 뒤에는 졸업할 때였다. 녀석은 자꾸 결석을 했고, 그때마다 난 교장실로 불려갔다. 왜 장기 결석자를 퇴학시키지 않느냐고 호통을 치던 때였다. 3일 결석이면 출석 촉구서를 보내야 했고 3번 반복하면 퇴학을 시키던 때였다. 지금과 달리 학생이 넘쳐났던 시절, 그날도 교장 선생님은 녀석이 사고를 쳐서 만약 뉴스라도 나오면 학교 명예를 어찌할 것이냐며 목에 핏대를 세우셨다.
시골에서 유학을 보냈지만 그때 그에게 졸업장은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행복하게 다니는 다른 친구들로 인해 상처만 커질 뿐이었다. 결국 새 엄마가 사는 고향집을 등지고 학교도 등졌다.
땅도 메말라야 물이 필요하고 잘 흡수하는 법, 축축한 땅은 그대로 물을 흘러 보내듯 녀석은 어떤 충고도 흡수하지 못하고 그대로 토해냈다. 절망과 분노가 그를 칭칭 옭아맨 듯 했다.
재혼이 흔치 않은 때였다. 어머니를 잃은 고통에 새 엄마의 이른 출현은 녀석이 넘기 버거운 고개였다. 장기간 누운 어머니가 돌아가시자마자 재혼한 아비 역시 40대 중반, 부모지만 아들을 기다려주지 않고 일을 서두른 측면도 없지 않았다.
태풍이 불면 나뭇가지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담이 무너지고 집이 넘어간다. 해일은 마을을 덮친다. 인간의 내면에 이는 심화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다행히 녀석은 어느 일터에서 좋은 여자 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부모가 되었다. 여자의 설득으로 아버지와 화합도 하게 되었다. 지금은 부모님 옆에 집을 짓고 같이 축사 일을 하고 있단다. 잃어버린 사랑을 사랑으로 되찾은 것이다.
친구와 재혼한 사람은 그의 사촌 누나였다. 그녀 역시 재혼이었다. 결혼은 완성 같은데 역시 미완성이었다. 사랑을 동사, 진행형이라는데, 인생도 마찬가지 완성이 없어 보인다.
두 번째 결혼한 친구나 그의 아버지나 그리고 그나 모두 생의 완성을 위해 나름의 길을 가고 있다. 사는 방법도 사랑하는 법도 각기 다르다. 그 누구도 실패한 삶을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멋지고 빛나게 자기 인생 지도를 그리고 싶어 한다. 그런데도 인생은 여전히 깊고 심오하다. 무엇보다 완성을 향해 열심히 나아갈 뿐, 미완성이다. 최선을 다해 좋은 방향으로 나를 들여놓아야 한다. 혼자 흥얼거린다.
“인생은 미완성 그래도 우리는 곱게 써가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