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유감’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4년 01월 11일(목) 00:00
가요사(史)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금지곡과 건전가요다. 독재정권 시절,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불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송창식의 ‘왜불러’와 ‘고래사냥’도 금지곡으로 묶였다. 학창 시절 구입한 앨범 마지막 트랙엔 늘 ‘시장에 가면’, ‘어허야 둥기 둥기’ 등의 건전가요가 실려 있던 기억도 난다.

1990년대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금지곡은 사라졌지만 가수가 음반 발매 전 한국공연윤리위원회(이하 공윤)에 내용을 검사받는 사전심의 제도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이런 상황속에서 심의 철폐를 강력히 주장하는 가수가 나타났다. 정태춘이다. 그의 대표곡 ‘시인의 마을’(1978)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불건전 요소가 많다는 이유로 공윤으로부터 ‘개작’ 지시를 받았고 결국 ‘고독의 친구 방황의 친구’는 ‘생명과 자연의 친구’로, ‘텅빈 가슴’은 ‘부푼 가슴’으로, ‘번민의 시인’은 ‘사색의 시인’으로 수정됐다. 그는 1990년 ‘아, 대한민국’과 ‘92년 장마, 종로에서’를 비합법적으로 유통·판매했고 ‘위헌 법률 심판 제청’을 신청하며 끊임없이 싸웠다.

정태춘의 외로운 싸움은 서태지의 등장으로 힘을 받는다. 1995년 4집 수록곡 ‘시대유감’에 대해 공윤이 가사가 과격하고 현실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이유로 수정을 요구하자 서태지는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등의 가사를 삭제하고 연주곡으로 수록해 버린다. 팬덤의 시초로 불리는 그의 팬들은 서명운동, 항의방문 등을 이어갔고 정치권까지 움직이며 결국 1996년, 60년만에 사전심의가 폐지됐다.

SM 소속 4인조 아이돌 에스파가 15일 ‘시대유감’ 리메이크 버전을 선보인다. 오랜만에 다시 들어본 ‘시대유감’은 스물 둘 청년 서태지가 쏟아낸 직설적이고 비판적인 가사와 강렬한 록 사운드가 여전히 마음을 움직인다. 이 노래가 발표된 28년 전과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답을 내리긴 어렵다. ‘시대유감’이 요즘 세대들에겐 어떻게 다가갈지, 노래 한곡이 담고 있는 역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mekim@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