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면 수출 1조원 - 송기동 예향부장
2024년 01월 09일(화) 07:00 가가
‘분식의 총아’, ‘식량난 해결의 역군’. 1960년대 중반 중앙일간지에 실린 라면 관련 기사의 제목이다.
1963년 국내에 첫 출시된 라면은 초창기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을 적극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시장이 급성장했다. 예식장에서 국수 대신 라면으로 답례하기도 했다. 당시 월간 900만식(食)의 라면 생산량은 연간 30만식의 식량을 대체했다. 한국산 라면은 1968년 10월부터 수출되기 시작했다. 첫 수출지는 베트남으로, 16만 달러 규모였다.
라면은 소중한 밥 한 끼를 대신했고 때로는 인스턴트 비상식이기도 했다. 특히 한겨울 산행 중 보온병에 담아온 뜨거운 물을 부어 먹는 컵라면이 그러했다. 1958년 일본인(안도 모모후쿠)이 발명한 인스턴트 라면은 한국 땅에서 그 나름의 생활문화를 형성했다. 라면을 처음 먹어본 때가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어릴 적 맛본 라면은 별미 이상의 것이었다. 그동안 먹은 라면의 개수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2022년 기준 한국인 1인당 연간 라면 소비량은 77개로, 베트남(85개)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야말로 한국인의 ‘제2의 주식’, ‘소울 푸드’라고 할만 하다.
윤덕노 음식문화 평론가는 ‘음식으로 읽은 한국 생활사’에서 “(라면의 역사는)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의 땀과 눈물이 모두 스며 있다”며 “라면에는 극한의 가난을 견디어 낸 중국 부두 노동자들의 질곡과 패전의 고통을 극복하려는 일본인의 노력, 산업화 과정에서 잘살아보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맨 한국인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고 말한다.
한국 라면 수출액이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전년 보다 24% 증가한 9억5200만 달러(1조2000억 원)로 잠정 집계됐다. 1960년대 ‘식량난 해결의 역군’이었던 라면이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K푸드’로 자리 잡았다.
K콘텐츠의 영향과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배고파서 먹었던 라면이 이제 전 세계인의 식(食)문화가 됐다.
/song@kwangju.co.kr
1963년 국내에 첫 출시된 라면은 초창기에는 그다지 인기를 끌지 못했지만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분식을 적극 장려하는 정부의 정책에 힘입어 시장이 급성장했다. 예식장에서 국수 대신 라면으로 답례하기도 했다. 당시 월간 900만식(食)의 라면 생산량은 연간 30만식의 식량을 대체했다. 한국산 라면은 1968년 10월부터 수출되기 시작했다. 첫 수출지는 베트남으로, 16만 달러 규모였다.
K콘텐츠의 영향과 전 세계적인 경기 불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한다. 배고파서 먹었던 라면이 이제 전 세계인의 식(食)문화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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