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과 매창 - 황옥주 수필가
2024년 01월 04일(목) 22:00
스승이신 시인 임효순 교수님을 찾아뵙던 날 매창전집을 선물 받았다. 800쪽이 넘는다. 당일로 밤샘하며 읽었다. 그 후로도 틈틈이 펼쳐보며 매창공원을 꼭 가보고 싶었다. 조선의 삼대 명기로 송도 황진이, 성천의 김부용, 부안의 매창을 들지만 시의 수준이나 양에 있어서 매창이 단연 으뜸이다.

그녀는 선조 때의 현리인 이탕종의 딸이다. 계유년에 태어났다하여 계생이나 계랑 등 이름도 많다. 그 중 널리 알려진 것은 그의 자호인 매창이다.

처음, 이 공원에는 매창의 시비만 있을 줄 알았다. 막상 둘러보니 그녀의 시는 광장에 있는 ‘이화우’를 필두로 8편뿐이고 연인이었던 유희경과 허균의 시를 중심으로 이병기 시 등 모두 13기가 세워져있다.

여기서 유독 마음과 눈길을 끈 것은 ‘매창의 죽음을 슬퍼하며’란 허균의 시다. 천상의 복숭아를 훔친 죄로 하늘에서 쫓겨난 항아를 빗대어 애달픈 정을 그렸다. 원문이나 번역자 이름은 없고 작자인 허균의 이름만 있다.

“아름다운 글귀는 비단을 펴는 듯하고/ 맑은 노래는 구름도 멈추게 하네/ 복숭아를 훔쳐서 인간 세계로 내려오더니/ 불사약을 훔쳐서 인간 무리를 두고 떠났네/ 부용꽃 수놓은 휘장엔 등불이 어둡기만 하고/ 비취색 치마엔 향기가 아직 남아있는데/ 이듬해 작은 복사꽃 필 때쯤이면/ 그 누가 설도의 무덤 지나려나”

‘애계랑’은 한문학자 유채근 교수의 ‘신화가 된 천재들’과 정민 교수의 ‘미쳐야 미친다’에도 나와 있다.

매창전집에는 허균과 매창의 이야기기 많다. 문정배의 ‘소설 이매창’에 두 사람이 처음 만나 파자(破字·한자의 자획을 풀어 나눔)로 인사하는 장면이 아주 흥미롭다. 허균은 매창의 이름을 듣고,

“길기도 하구만. 그러지 말고 설중유화(雪中有花) 벽공유심(碧空有心)이라 하게나.” 설중유화는 매(梅)를 벽공유심은 창(窓)을 뜻하는 말이다.

“임이 그렇게 하시라면 첩은 하명대로 하겠나이다.”

“매창이라, 결국 그리움과 기다림일세 그려.”

“어찌 그리 풀이를 하시는지요?”

“매는 그리움의 대상이며, 창은 기다림의 공간이 아니겠는가?”

“그것도 임께서 그리 하라시면 첩은 그렇게 하겠나이다.”

천재 문장가에 꿈 많고 낭만적인 32세의 선비가 28세의 이름난 기생을 만났으니 춘산화접이라. 1601년 7월 23일, 그날은 공교롭게도 하루 종일 비가 내렸던 모양이다. 두 사람은 시와 술과 거문고와 노래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날이 저물도록 즐겼다.

밤이 깊어 매창은 조카로 하여금 허균을 모시게 했다. 그녀의 첫사랑 유희경이 허균의 가까운 친구며 매창의 정인이었던 김제 군수 이귀도 허균의 친구이자 선배였다. 한 쪽은 유곽의 기녀요 한 쪽은 권세가의 풍류남아다. 그런데도 육체적 욕정을 억제하고 순수한 플라토닉 사랑으로 10여년이나 지속했다 한다.

허균이 공주 목사직에서 파직되고 부안으로 내려와 우반동 정사암에 은거한 것도 매창에 대한 연정과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해 겨울 승문원 판교 벼슬을 제수받아 서울로 올라 온 허균이 1610년 여름, 매창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지은 시가 바로 이 공원에 초청된 ‘애계랑’이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설도(薛濤)의 등장이다. 설도는 당나라 시대에 명성을 날린 시인 기녀다. 격조 높고 고상하고 우아한 문장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사람이다. 허균은 그런 설도보다 매창의 재능을 더 높이 샀다는 의미 같다.

설도가 우리 귀에 낯설지 않음은 그녀의 시 ‘춘망사’를 시인 김억이 번역하여 가곡 ‘동심초’의 가사로 썼기 때문일 터다. 학생시절 이 노래에 빠져보지 않은 자 없었고 지금도 노인들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그럴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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