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저문 강가에서 - 김향남 수필가
2023년 12월 29일(금) 00:00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학교는 동쪽에 있고 집은 서쪽에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석양을 바라보며 달리는 중이었다. 처음엔 눈이 부셔 쳐다볼 수가 없었다. 가리개를 내려도 내쏘는 빛을 막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까지 동원해서야 겨우 달릴 수 있었다. 태양은 아직 광채를 발하는 중이었고 서산에 닿으려면 두어 뼘은 남은 듯했다. 그 사이 점점 차들은 몰려들고 길은 막히고, 순식간에 저녁이 오고 있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대신 강변으로 향했다. 어서 돌아가 저녁을 짓고 식구들을 돌봐야 했지만, 자꾸 딴 데로 팔려가고 있었다. 해는 사뭇 매혹적이었다. 발갛고 크고 둥그런 제 몸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어서 오라 손짓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휘황한 광채를 발하며 쳐다볼 수도 없이 위압적이었던 데 비해 몰라보게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주홍색도 아니고 살구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빨간색도 아닌, 아무것도 섞지 않은 수채 물감 하나로 가볍게 붓질한 듯 그윽하고 유순했다. 연하장의 그림처럼 간결하고 단정한, 따스하고 다정한 자태였다.

한 해의 끝자락이어선가. 종강을 하고 난 뒤의 어쩐지 씁쓸한 기분 때문인가. 나는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곧장 집으로 가기는 싫었다. 누구와 커피라도 한 잔 마시고 싶었지만 딱히 떠오르는 사람도 없었다. 이런 날엔 그냥 혼자인 게 좋다는 거겠지…. 그걸 눈치챈 것일까? 이래저래 심드렁한 나를 저 석양이 앞장서 끌어주었다. 전혀 위압적이거나 강요하는 기색 없이 정면으로 자신을 마주 보게도 해주었다.

석양이 좋은 건 찡그리지 않고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인지 몰랐다. 비로소 같은 눈높이에서 대면이 가능한 때문인지도. 혹은 낮에서 밤으로, 발산에서 수렴으로, 소란에서 고요로 ‘건너가는’ 시간이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건너간다’는 것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용기를 내보는 것이며, 그로 하여 변화와 도약을 예고해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석양에는 뭔가가 나직이 고여 들어오기도 하니까.

이윽고 강변, 차를 세우고 밖으로 나갔다. 해는 이제 막 능선을 넘어가는 중이었다. 하늘에는 어느새 꼭두서니빛 노을이 깔렸다. 빛바랜 억새가 나부끼고 이따금 새들이 날아가고, 저만치 강물이 흘렀다. 소복소복 하얀 꽃밭도 있었다. 혹시 목화밭? 그건 아니었다. 어젯밤 내린 눈이 백일홍 마른 줄기에 목화인 양 앉아 있는 거였다. 앞에 가던 노부부가 추억처럼 웃어 주었다.

나는 서둘러 징검다리 쪽으로 향했다. 지난 여름 우연히 찾은 그곳에서 붉게 물든 노을을 황홀하게 지켜 봤던 것이다. 다시 그 풍경을 볼 수 있을까? 해는 순식간에 넘어갈 것이고, 사위는 금세 어둠에 잠겨버릴 것이므로 거의 뛰다시피 했다. 해지는 풍경은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그것은 숱한 세월만큼이나 다채롭고 다양했다. 계절 따라 날씨 따라 다르고, 보는 사람 마음 따라서도 달랐다. 벚꽃이나 매화꽃 날리듯이 소리 없이 흩어지기도 하고, 동백이나 모란꽃 지듯이 생글생글 산화할 때도 있었다. 어떤 날은 낮게 가라앉기도 했고, 어떤 날은 회오리처럼 검붉게 타오를 때도 있었다.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하던가. 물속에 또 하나의 하늘이 있었다. 해는 이미 산 너머로 건너가 보이지 않는데 그 마지막 잔광인가, 물속에 내려앉아 더욱 오롯해진 것이었다. 제 존재를 규명하듯,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되비치듯 소멸 직전의 비상한 향연이었다. 오묘한 색채와 부드러운 질감과 고요한 깊이, 그리고 둥지 찾아 날아가는 새들의 울음까지, 노을 지는 겨울 강의 풍경이 꼼짝없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해 저문 강가, 그 여운은 짧으면서도 길었다. 삽시간의 황홀, 축제처럼 달뜨는 시간이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자신을 불태우고 있는 태양이 있기 때문이란다. 남몰래 행한 선행처럼 주변까지 따스하게 물들이는 감동을 주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제 역할 다하고도 다시금 내어놓는 지극한 행선(行善), 돌이켜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노을의 미덕일 것이다.

태양은 이제 희미한 잔광조차 남기지 않고 흔적 없이 사라졌다. 하루가 끝나고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것이다. 오늘 여기에서 또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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