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음식 급식의 날’ 시행했으면… - 오성진 농협중앙교육원 교수
2023년 12월 28일(목) 00:00
나는 급식 세대가 아니다. 어머니가 싸주시는 도시락을 먹고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때에는 점심과 저녁, 하루 두 끼를 도시락으로 먹었다. 식사 시간에 도시락 뚜껑을 열면 각 가정의 다양한 반찬들이 다양한 냄새를 풍기며 배고픈 학생들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 개중에는 내가 좋아하는 반찬도 있고 손 대기 싫은 반찬도 있었다. 특히 우리 어머니께서는 새끼손가락만한 국물용 멸치를 양념간장에 무쳐 주셨는데 지금도 죄송하지만 젓가락 한번 대지 않았다. 또한 많은 학생들의 반찬통에는 김치가 들어 있었는데 먹어보면 집안별로 각기 다르게 담근 김치였던 만큼 김치 뷔페나 다름없는 식사시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급식으로 전환되어 모든 학생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같은 밥에 같은 반찬을 먹고 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학교별로 주간 식단들이 공개되어 있다. 전국의 여러 학교들의 식단을 보게 되면 정말 맛있는 음식들이 많다. 학생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들로 구성된 듯하다. 하지만 A학교의 식단이나 B학교의 식단, 그리고 다른 학교들의 식단을 봐도 어디서나 먹을 수 있을 음식들로 식단이 구성되어 있다.

목요일 저녁에는 모 방송국에서 ‘한국인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한다. 12월 21일 기준으로 벌써 635회다. 1년에 50번 방영된다고 가정하고 계산해도 벌써 12년이 넘는 장수 프로그램이다. 한 회에 열 가지의 음식이 소개된다면 최소 6000여 가지 이상의 우리 음식이 소개된 셈이다. 중복된 음식들이 있다손 쳐도 보면서 놀라는 점을 요약하면 ‘이런 음식도 있구나’와 ‘이렇게도 요리해서 먹을 수 있구나’ 이 두 가지로 함축된다.

우리나라에 이렇게나 많은 음식들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지리적 특성 때문일 듯 싶다. 반도라는 특성상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 서해와 동해, 그리고 남해는 각각의 지형적 특성으로 잡히는 수산물의 종류가 다양하다. 또한 내륙 쪽으로는 국토의 70% 정도가 산지로 되어 있어 지형에 따른 수많은 식물들을 채집할 수 있었으며 봄부터 겨울까지 뚜렷한 사계절로 철마다 나는 식물(食物)들이 달랐다.

하지만 이렇게나 다양한 음식도 누군가가 요리해서 먹어야만 존재할 수 있고, 또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져야 내일의 또 다른 세대들이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다양한 음식은 그곳의 자연을 담았고 선조들의 지혜를 담았으며 지역의 가치를 담은 소중한 보물같은 존재이다. 이런 음식을 이젠 가정 안에서 세대를 통해 전수되기는 어려운 상황인 듯하다. 그러기에 학교의 급식이라는 제도는 그 지역의 문화를 계승할 수 있는 좋은 플랫폼이 아닐까 한다.

모든 학교에서 ‘지역 음식 급식의 날’을 시행하는 걸 상상해 본다. 해당 지역의 음식을 아시는 어르신들을 통해 지역 고유의 음식들을 발굴하여 식단을 짠 다음, 조리하실 수 있는 어른들을 섭외해서 그분들의 도움으로 음식을 만들고 이를 학생들에게 이야기와 음식으로 말해주는 날이다. 어떤 학생은 이미 가정에서 먹어 봤을 테고 어떤 학생은 이름조차 듣지 못했던 그 음식들을 통해 지역의 문화가, 지역의 음식이 또 한 세대를 이어가는 날이 바로 ‘지역 음식 급식의 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역 소멸을 우려하고 있다. 지역 소멸은 공간의 소멸만을 초래하지 않는다. 세대의 소멸, 문화의 소멸, 그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지역 가치의 소멸도 포함한다.

그래서 세대와 문화, 그리고 가치가 담겨 있는 음식이라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살려 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대 단절도 다시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2022년 기준으로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수의 35%라고 하니 이젠 대가족, 소가족, 핵가족을 지나 핵개인의 시대가 도래하고 앞으로도 더 늘어날 것이다. 물리적으로 1인 가구가 더 증가할지는 몰라도 음식으로 연결된 무언가를 우리가 만들어 내고 계속해서 유지시킨다면 1인 가구를 통해서라도 지역가치는 계속해서 계승시켜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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