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火爐) - 김대성 제2사회부장
2023년 12월 26일(화) 22:00 가가
화로(火爐)에 고기를 구워내는 고깃집이 다시 뜨고 있다. 이러한 고깃집의 인기는 저렴한 비용에 있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화로에 고기를 굽는다는 자체에 있지 않나 싶다. 예스러운 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는다는 것에 대한 향수에 더해 고소한 고기의 맛이 어우러지면 없던 식욕도 살아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숯불을 담아놓는 그릇인 화로는 난로의 등장과 같이 나무를 베어다 둥글게 기대놓고 지피던 모닥불에서 나온 것 같다. 그 역사는 선사시대까지 올라가며 변화를 거쳐서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를 보이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이동식 철제 화로가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기원이 어디에 있든 성냥이나 라이터를 비롯해 불을 지필 수 있는 도구는 물론 기초 생활물자조차 궁핍했던 시절, 화로는 가정의 ‘작은 태양’이었다. 아침 일찍 불을 지핀 아궁이에서 화로에 불씨를 모으면 타고 남은 재로 덮어 잘 다독거리고 오랫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화로에 인두를 묻었다가 동정(옷깃 위에 조붓하게 덧꾸미는 흰 헝겊, 오늘날 옷의 목 부분, 칼라)의 다듬이질을 했다. 또 놋양푼에 엉긴 조청도 녹이고, 더러는 부스럼에 붙이는 고약을 눅게 했다.
이처럼 화로는 언제나 따뜻한 불씨를 안고 우리의 삶을 덥혀 주던 도구로 세대를 대물림해 따스함을 제공했고, 가족 간 화목한 정(情)을 일깨워주던 구심점이었다.
하지만 화로는 1950년대 중반 석유의 보급과 성냥의 대중화, 석유, 석탄 등 연료의 혁신에 따른 난방기구의 발달 등으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며 서서히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초 농촌 지역까지 전기가 보급되면서 하나 둘 사라져 이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구시대 유물이 됐다.
이제 고깃집에서나마 의외의 쓰임새로 눈길을 사로잡는 화로 소식을 접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다만, 겨울밤 질화로에 밤을 구워 손자 입에 넣어 주시던 할아버지 생각과 함께 몸 녹일 난로 하나 없이 차가운 골방에 홀로 밤을 지새우는 어르신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 켠이 찡하다.
/김대성 제2사회부장 bigkim@kwangju.co.kr
기원이 어디에 있든 성냥이나 라이터를 비롯해 불을 지필 수 있는 도구는 물론 기초 생활물자조차 궁핍했던 시절, 화로는 가정의 ‘작은 태양’이었다. 아침 일찍 불을 지핀 아궁이에서 화로에 불씨를 모으면 타고 남은 재로 덮어 잘 다독거리고 오랫동안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했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화로에 인두를 묻었다가 동정(옷깃 위에 조붓하게 덧꾸미는 흰 헝겊, 오늘날 옷의 목 부분, 칼라)의 다듬이질을 했다. 또 놋양푼에 엉긴 조청도 녹이고, 더러는 부스럼에 붙이는 고약을 눅게 했다.
이제 고깃집에서나마 의외의 쓰임새로 눈길을 사로잡는 화로 소식을 접하니 반갑기 그지없다. 다만, 겨울밤 질화로에 밤을 구워 손자 입에 넣어 주시던 할아버지 생각과 함께 몸 녹일 난로 하나 없이 차가운 골방에 홀로 밤을 지새우는 어르신들을 떠올리니 마음 한 켠이 찡하다.
/김대성 제2사회부장 big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