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는 온화하고 다정하다
2023년 12월 26일(화) 00:00
아라이 요시노리
화가
필자는 2023년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 동안 ‘아트 인 레지던스’를 통해 광주에 머물 기회를 얻었다. 광주를 몇차례 방문했지만 장기간 머무는 것은 처음이었다. 레지던스는 광주 중심부에 가까운 계림동에 있었다. 예전에 일본인이 살았던, 무려 76년 된 가옥에서 생활하며 작업을 하고 예술의 거리 은암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프로젝트는 흥미로웠다.

한여름에는 힘들기도 했지만 매일 매일 작업하는 과정은 즐거웠다. FM 라디오 방송에서 가야금과 거문고, 대금이 연주하는 전통음악과 판소리를 들으며 어떤 작품을 만들지 구상하고 스케치했다. 전시 공간은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식으로 작품을 배열할지 상상해 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내가 머문 계림동은 다양한 가게와 시장, 주택가가 어우러진 한적한 공간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네였다. 한약제조업, 창틀과 목재 등을 판매하는 건설자재점, 스크린경마장, 게임센터 등이 모여 있고 큰 거리의 양쪽에는 골동품 가게, 한국전통의 나전칠기점도 남아 있었다. 인근 시장에는 야채, 생선, 고기 등을 파는 식재료점을 비롯해 시민생활에 빠뜨릴 수 없는 생활용품이 진열돼 있어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내가 이곳의 주민으로 살고 있는 듯한 생각도 들었다.

계림동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었다. 주변에는 고층아파트가 오래된 거리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빨래방, 유치원, 편의점과 대형마트, 빵집, 유기농 식자재나 채소가게도 있었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동명동을 찾았을 때는 한국의 오래된 주거 공간인 한옥이 새로운 메뉴를 내놓는 레스토랑과 조화를 이뤄 새롭고 활기찬 모습을 선사하고 있었다.

때때로 산책하며 들렀던 카페에서 마신 생강 라떼는 기분 전환이 되고, 음식점에서는 특징이 있는 김치, 콩나물, 시금치 등의 반찬을 아낌없이 내 주었다. 특히 어린시절 먹었던 그리운 된장찌개는 언제나 맛있었다. 또한 거리의 은행나무와 메타세콰이어의 가로수는 늘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한편으로는 계림동의 쓸쓸한 모습도 느껴졌다. 도로에서 한 걸음 안쪽으로 들어서면 한옥의 지붕만이 남아 있는 폐옥과 잔디 투성이의 공지가 눈에 보였다.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줄지어있지만 도시계획이 진행중인 계림지구는 그늘과 같은 존재로 도시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생각됐다.

머지않아 대부분의 현대 도시처럼 개발과 리노베이션의 파도에 의해 지금까지의 경관은 크게 바뀌고 생활 모습도 사람들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져 갈 것이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밟고 있다.

도시 개발로부터 생성된 고층 아파트나 새로운 점포가 생겨나더라도 이 땅의 사람들이 지닌 역사관이나 기억을 품고 있을 자연이나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남기고 온화한 경관을 소중히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잠시 머물다 갈 여행자의 센티멘털한 생각일까? 사람들의 DNA는 사진으로의 추억만이 아닌, 땅에 직접 발을 딛고 선 기억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거리를 걸으며 늘 생각했다.

아트 인 레지던스에 참여한 결과물은 은암미술관에서 열린 ‘선·센·선의 기억과 행방’이라는 전시를 통해 선보였다. 광주에서 구입한 한지와 먹을 이용해 작품을 제작했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작품전을 통해 결실을 이루었다.

광주에서 생활하고, 작품을 제작하고, 거리를 걷고, 대지에 서서 공기를 마시던 일이 꿈만 같다. 그 때 만났던 많은 사람들로부터 온화하고 다정한 마음을 받았다. 레지던스 4개월 동안, 어디에 있어도 사람과 사람은 대화나 작품을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광주에서의 따뜻한 환대를 언제까지나 잊지 못할 것이다. 진심으로 고맙고 감사하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