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얼음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12월 25일(월) 22:00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밤새 소담스런 눈이 내렸다. ‘아기 예수’가 탄생한 성탄절은 이념과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인들과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런데 올해 성탄절은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다. ‘예수 탄생의 성지’인 요르단 강 서안도시 베들레헴에서 70㎞ 가량 떨어진 가자지구에서 포성이 멎지 않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이 2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난민촌을 공습해 최소 7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탄절 전야에 미사를 집전하며 “오늘날에도 그분은 이 세상에서 설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면서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종식을 호소했다.

지난해 2월부터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키이우시의 한 카페 주인은 포탄 탄피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세워 올렸다.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전쟁 중임을 알리기 위해 만든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알려졌다. 독일 뮌헨으로 피란을 떠난 우크라이나 일곱 살 소년은 산타클로스의 유래로 여겨지는 ‘성 니콜라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평화, 건강, 꽃이 만발한 우크라이나”를 소원으로 빌었다.

국내에서도 ‘화이트 크리스마스’ 눈발 속에서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70대 입욕객 세 명이 목욕탕에서 감전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눈썰매장 보행통로 지붕이 인공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세 명이 다쳤다. 어이없는 후진국형 사고다.

광주시 동구 국립 아시아문화전당 앞 광장에는 ‘사랑의 행복 온도탑’이 세워져 있다. 올해 모금 목표액은 50억 7000만 원. 지난 1일 제막한 온도탑 수은주는 현재 30도 정도에 머물러 있다. 한해를 마무리 하는 이맘때, 주위를 한번 돌아보게 된다. 글로벌한 관점에서는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전쟁 종식이 절실하다. 강추위 속에서 떨고 있을 가난한 이웃들에 대한 온정도 아쉽다. 아기 예수가 전하는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는 언제쯤 지구촌에 정착될 수 있을까. 박남준 시인의 시 ‘따뜻한 얼음’ 한 구절을 읽어본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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