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할 권리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3년 12월 20일(수) 21:30 가가
SF 영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매트릭스’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선택’이다. 라틴어의 어머니(Mater)와 자궁(-ix)의 합성어인 매트릭스(Matrix)에 남을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를 시작으로 주인공 네오는 모든 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서 당연한 것이 아닌 남다른 선택을 하며 인류의 운명을 책임질 ‘그(the One)’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그 선택은 자신의 이익, 명분이 아닌 본능, 사랑에 기반하고 있다. 매트릭스를 설계해 만들어낸 아키텍트가 “99%의 사람은 선택권이 주어지면 만족하며 매트릭스에 순응한다”고 네오에게 말하는 장면이 압권이다. 이성적인 판단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익숙하다는 의미다.
신분, 재산, 성별에 따라 제한은 있었으나 인류는 수천년 전인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선거 제도를 만들어 대표를 직접 뽑았다. 유권자의 표를 더 얻는 이에게 일정기간 통치권을 허락한 것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이어지지 못했고, 고대·중세를 거쳐 근대 민주주의 발달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이후 일정한 연령이 되면 유권자가 돼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이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기반이 됐다.
선거 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유권자의 올바른 판단, 정당의 공정한 후보 선정, 대표의 선공후사 자세 등의 조건이 잘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정당의 역할이 핵심이다. 투명한 과정을 거쳐 후보를 선출하고 다른 정당과의 경쟁을 거치면서 후보의 역량을 끌어올려 지역과 국가에 기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하지만 시·군·구의 단체장·의원에 대한 정당의 후보 공천이 오히려 진정한 지방자치를 저해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주민, 당원들의 의견보다 중앙당과 국회의원의 입김이 더 강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28년이 됐다. 최선은 물론 차선도 아니고, 최악과 차악을 놓고 고민해야 하는 유권자들에게 선택할 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기초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 공천권을 없애는 방안도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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