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늘 그렇게, 다정하게 ‘우리 동네 구멍가게’]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팝니다
2023년 12월 18일(월) 20:00 가가
슬레이트 지붕·녹슨 샷시·빛바랜 간판
점포 곳곳에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담배·과자·소주…파는 물건도 소박
손님 없어도 놀다 가는 사람은 북적
물건 사고 소식 나누는 동네 사랑방
오고가는 외상 거래엔 신뢰 가득
대대손손 이어온 자리, 추억도 한보따리
점포 곳곳에 세월의 흔적 고스란히
담배·과자·소주…파는 물건도 소박
손님 없어도 놀다 가는 사람은 북적
물건 사고 소식 나누는 동네 사랑방
오고가는 외상 거래엔 신뢰 가득
대대손손 이어온 자리, 추억도 한보따리
#영광 대마면 명진슈퍼
차들이 오고가는 교차로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구멍가게. 영광군 대마면 장보사거리에 위치한 ‘명진슈퍼’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진 가게는 과연 슬레이트 지붕이나 빛바랜 담배 간판, 곳곳에 녹슨 샷시까지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손님이 찾아올까 싶은 이곳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만치 멀리서 봐도 가게 안 손님이 북적북적하다.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시골마을 슈퍼에 손님이 이리 많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그리 넓지 않은 공간에 나이드신 할아버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신발 벗고 올라서는 마루위에는 너댓 명의 할아버지들이 심심풀이 화투놀이를 하고 주위로 또 할아버지들이 빙 둘러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가게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들이라기보다는 가게에 놀러온 이웃들이다.
“우리집은 놀러오는 사람들로 항상 시끌벅적해. 가끔 담배나 막걸리 사러 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와서 놀다가는 사람들이 더 많제.”
주인은 올해 나이 여든이 되었다는 ‘최명진’ 할아버지다. 부모님이 아들의 이름을 따 ‘명진 슈퍼’라 이름을 지었고 부모님을 도와 가게 일을 하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50년이 넘게 슈퍼를 운영하고 있다. 물건을 팔아주는 이들이 아니라도 기꺼이 마루를 내어주고 따듯하게 보일러를 틀어주는 친절함도 잊지 않는다.
가게로 사용되는 건물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살던 집 문간채였다. 길을 넓히면서 한쪽은 잘려 나가 도로가 되고 남겨진 공간이다. 집이 오래되다보니 가게로 쓰이는 곳은 기와를 내리고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를 했다. 가게 안쪽으로는 사람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안채로 사용하던 일본식 가옥이 그대로 남아 있다.
명진슈퍼가 있는 장보사거리는 전남 영광군과 전북 고창군 경계인 도계(道界)다. 예전에는 길이 나 있지 않아 고창 마을 사람들은 이곳까지 나와야 차를 탈 수 있었다.
“장성을 가던지, 광주를 가던지, 영광을 가던지, 시장에 가더라도 사람들이 전부 다 이곳으로 나왔어. 지금은 신도로가 나고 사방이 뚫려서 차들이 우회도로로 빠져나갔는데 예전에는 이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우리집에서 매표도 하고 그랬지.”
세월이 흘렀어도 예나 지금이나 명진슈퍼는 동네 사랑방이다.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은 없지만 기꺼이 놀다가 가시라고 공간을 내어주는 명진 할아버지 덕분이다. 슈퍼는 식육점과 함께 운영중이다. 슈퍼 한쪽 식육점은 아내인 주인할머니가 운영하는데 예전부터 할머니 손맛이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단다.
“이익을 생각한다면 진작부터 치웠어야지. 나이를 먹으니까 뭐 할 것이 없어. 어디 가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누가 일자리를 주지도 않아. 사람 구경이나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 지키고 있는 거지 장사하려고 있는 건 아니야.”
#함평 대동면 향교수퍼
“계세요?” “계신가요?” “안에 안계세요?” 세 번을 연달아 부르니 그제야 가게에 달린 방안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도로가에 위치한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간간이 이용하는 슈퍼다. 향교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가게 이름도 ‘향교수퍼’다. 말이 슈퍼지 실상은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작은 규모다.
올해로 여든셋이 됐다는 주인할머니는 이 가게가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직접 이름을 들려주지는 않았으나 가게 앞 명패에 주인할머니의 이름 세글자 ‘김금순’이 쓰여 있다.
“시어머니가 하던 가게를 결혼하고는 내가 맡아서 했어요. 시집 막 와서부터 했으니 내가 가게를 맡은 지도 60년은 됐어요. 시어머니도 젊어서부터 했다고 들었으니 가게가 100년은 넘었겠죠.”
‘향교수퍼’의 처음 시작은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담배가게’라고 부르던 게 가게이름이었다. 김 할머니가 맡으면서부터 향교수퍼라고 명명하고 지붕 옆에 간판도 설치했다.
“한때는 우리가 슈퍼를 크게 했어요.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고 봐야지요. 애들이 과자 먹고 싶어서 수시로 들락날락 하고 남자 어른들은 술을 그렇게 많이들 마셨는데 소주를 한 번 들일 때 100짝씩 들이고 했으니까요. 지금은 시골이 죽으면서 가게도 죽었지요. 물건이 안 나가니까.”
가게는 안쪽 주택과 연결돼 있는 구조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다가 짚을 내리고 기와를 올렸다.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여러번 고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한때는 벽까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많았을텐데 지금의 진열대는 비어있는 곳이 많다. 중앙에는 과자류가 20여 종, 뒤쪽으로는 몇 가지 라면과 소주, 맥주, 안에 훤히 보이는 냉장고에는 6~7가지 종류의 음료수와 생수가 전부다. 50가지는 족히 넣을 수 있는 담배 진열대에는 13가지의 담배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다행히 아직 가게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있다. 그마저도 없으면 가게 운영을 못할 판이다. 물건을 대주는 사람도 40년 넘게 일을 해와서 나이가 많지만 심심하지 않으려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단다.
“단골손님들은 여기 문 닫으면 어디 갈 데 없어 ‘징하다’고들 해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하고는 있는데 언젠가는 그만둘 거라는걸 아니까 일부러 물건도 조금씩만 갖다 놓고 있어요.”
#광주 양림동 소망슈퍼
늘상 지나다니면서 궁금했던 곳이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만한 양림동 좁디좁은 골목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입간판이 항상 눈에 띄었다. 노랑색 간판에 붉은색으로 띠를 두르고 검정색 글자로 반듯하게 쓰여있는 네 글자 ‘소망슈퍼’.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골목을 향해 발길을 돌리니 붉은색 비치용 파라솔이 주택 담벼락을 다리삼아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뒤로 자그맣게 ‘소망슈퍼’ 간판이 보인다. 주택 마당에 설치된 구멍가게다.
집 마당에 평상 하나를 두고 담벼락 안쪽에 진열대를 놓아 물건들을 채워넣었다. 두루마리 화장지와 칫솔, 치약, 멀티탭, 장갑, 마스크, 면도기, 건전지, 수세미 등 생활용품과 각종 라면류와 과자, 김, 양념류, 계란, 음료수, 주류 등 식재료까지 규모는 작지만 웬만한 것들은 갖추고 있는 엄연한 마켓의 모양새를 갖췄다. 없는 건 한 가지. 담배는 판매하지 않는다.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이런 구멍가게는 남구 쪽에서는 우리집 밖에 없을 거에요. 다들 마트로 가고 편의점으로 가고 하니 살아남은 구멍가게가 없지요. 나야 그냥 안집에서 심심풀이로 하고 있는거라 가게라고 할 수도 없어요.”
올해 80세인 주인할머니가 가게를 차린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남편이 아래 큰길 쪽에 40년 넘게 전업사를 해오다가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게 됐고 2년 전 간판을 떼어다가 집 앞에 붙여놓으면서 가게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물건을 대주는 사람도 없어요. 물건을 주문해도 이런 곳은 가져다주지도 않아요. 그나마 우리집에 물건을 가져다 주는 사람도 80살 먹은 할머니에요. 리어카에다가 물건 싣고 다니면서 바나나 우유 몇 개, 요쿠르트 몇 개 갖다줘요. 그 사람도 젊었을 때는 충장로에서 장사 꽤 잘했다고 들었어요.”
손님들은 거의가 동네 사람들이다. 물건 한 두 가지 사는 사람들은 멀리 마트까지 걸어나갈 필요없이 소망슈퍼에서 해결한다. 종종 외상을 하고 가는 이들도 있다.
과자와 음료수, 물, 껌까지 몇가지 물건을 구입하는데 계산이 금방이다.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암산 실력이 상당하다.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하는 주인할머니는 그래도 일 없이 놀고만 있는 게 싫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민들을 위한 구멍가게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
차들이 오고가는 교차로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구멍가게. 영광군 대마면 장보사거리에 위치한 ‘명진슈퍼’다.
동네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알려진 가게는 과연 슬레이트 지붕이나 빛바랜 담배 간판, 곳곳에 녹슨 샷시까지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손님이 찾아올까 싶은 이곳에 사람들로 가득하다. 저만치 멀리서 봐도 가게 안 손님이 북적북적하다. 사람들이 떠나고 없는 시골마을 슈퍼에 손님이 이리 많다니 믿을 수 없는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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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슈퍼’는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살던 집 문간채를 수리해 운영하고 있다. |
명진슈퍼가 있는 장보사거리는 전남 영광군과 전북 고창군 경계인 도계(道界)다. 예전에는 길이 나 있지 않아 고창 마을 사람들은 이곳까지 나와야 차를 탈 수 있었다.
“장성을 가던지, 광주를 가던지, 영광을 가던지, 시장에 가더라도 사람들이 전부 다 이곳으로 나왔어. 지금은 신도로가 나고 사방이 뚫려서 차들이 우회도로로 빠져나갔는데 예전에는 이곳에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우리집에서 매표도 하고 그랬지.”
세월이 흘렀어도 예나 지금이나 명진슈퍼는 동네 사랑방이다. 매출을 올려주는 손님은 없지만 기꺼이 놀다가 가시라고 공간을 내어주는 명진 할아버지 덕분이다. 슈퍼는 식육점과 함께 운영중이다. 슈퍼 한쪽 식육점은 아내인 주인할머니가 운영하는데 예전부터 할머니 손맛이 좋아 손님이 끊이지 않았단다.
“이익을 생각한다면 진작부터 치웠어야지. 나이를 먹으니까 뭐 할 것이 없어. 어디 가서 일을 할 수도 없고 누가 일자리를 주지도 않아. 사람 구경이나 한다는 생각으로 여기 지키고 있는 거지 장사하려고 있는 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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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군 대마면 장보사거리에 자리한 ‘명진슈퍼’ 내부. 인근 마을에서 찾아온 할아버지들의 사랑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
“계세요?” “계신가요?” “안에 안계세요?” 세 번을 연달아 부르니 그제야 가게에 달린 방안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함평군 대동면 향교리 도로가에 위치한 이곳은 마을 주민들이 간간이 이용하는 슈퍼다. 향교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가게 이름도 ‘향교수퍼’다. 말이 슈퍼지 실상은 구멍가게나 다름없는 작은 규모다.
올해로 여든셋이 됐다는 주인할머니는 이 가게가 100년이 넘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직접 이름을 들려주지는 않았으나 가게 앞 명패에 주인할머니의 이름 세글자 ‘김금순’이 쓰여 있다.
“시어머니가 하던 가게를 결혼하고는 내가 맡아서 했어요. 시집 막 와서부터 했으니 내가 가게를 맡은 지도 60년은 됐어요. 시어머니도 젊어서부터 했다고 들었으니 가게가 100년은 넘었겠죠.”
‘향교수퍼’의 처음 시작은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였다. 오가는 사람들이 ‘담배가게’라고 부르던 게 가게이름이었다. 김 할머니가 맡으면서부터 향교수퍼라고 명명하고 지붕 옆에 간판도 설치했다.
“한때는 우리가 슈퍼를 크게 했어요.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고 봐야지요. 애들이 과자 먹고 싶어서 수시로 들락날락 하고 남자 어른들은 술을 그렇게 많이들 마셨는데 소주를 한 번 들일 때 100짝씩 들이고 했으니까요. 지금은 시골이 죽으면서 가게도 죽었지요. 물건이 안 나가니까.”
가게는 안쪽 주택과 연결돼 있는 구조다. 처음에는 초가집이었다가 짚을 내리고 기와를 올렸다. 세월이 오래되다 보니 여러번 고치기도 했다고 전한다.
한때는 벽까지 빈틈이 없을 정도로 물건이 많았을텐데 지금의 진열대는 비어있는 곳이 많다. 중앙에는 과자류가 20여 종, 뒤쪽으로는 몇 가지 라면과 소주, 맥주, 안에 훤히 보이는 냉장고에는 6~7가지 종류의 음료수와 생수가 전부다. 50가지는 족히 넣을 수 있는 담배 진열대에는 13가지의 담배만이 놓여있을 뿐이다.
다행히 아직 가게에 물건을 가져다주는 사람도 있다. 그마저도 없으면 가게 운영을 못할 판이다. 물건을 대주는 사람도 40년 넘게 일을 해와서 나이가 많지만 심심하지 않으려고 계속 일을 하고 있단다.
“단골손님들은 여기 문 닫으면 어디 갈 데 없어 ‘징하다’고들 해요. 아무것도 안하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하고는 있는데 언젠가는 그만둘 거라는걸 아니까 일부러 물건도 조금씩만 갖다 놓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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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상 지나다니면서 궁금했던 곳이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만한 양림동 좁디좁은 골목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입간판이 항상 눈에 띄었다. 노랑색 간판에 붉은색으로 띠를 두르고 검정색 글자로 반듯하게 쓰여있는 네 글자 ‘소망슈퍼’.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골목을 향해 발길을 돌리니 붉은색 비치용 파라솔이 주택 담벼락을 다리삼아 지붕 역할을 하고 있다. 그 뒤로 자그맣게 ‘소망슈퍼’ 간판이 보인다. 주택 마당에 설치된 구멍가게다.
집 마당에 평상 하나를 두고 담벼락 안쪽에 진열대를 놓아 물건들을 채워넣었다. 두루마리 화장지와 칫솔, 치약, 멀티탭, 장갑, 마스크, 면도기, 건전지, 수세미 등 생활용품과 각종 라면류와 과자, 김, 양념류, 계란, 음료수, 주류 등 식재료까지 규모는 작지만 웬만한 것들은 갖추고 있는 엄연한 마켓의 모양새를 갖췄다. 없는 건 한 가지. 담배는 판매하지 않는다.
“다른 곳은 잘 모르겠고 이런 구멍가게는 남구 쪽에서는 우리집 밖에 없을 거에요. 다들 마트로 가고 편의점으로 가고 하니 살아남은 구멍가게가 없지요. 나야 그냥 안집에서 심심풀이로 하고 있는거라 가게라고 할 수도 없어요.”
올해 80세인 주인할머니가 가게를 차린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남편이 아래 큰길 쪽에 40년 넘게 전업사를 해오다가 나이가 들어 일을 그만두게 됐고 2년 전 간판을 떼어다가 집 앞에 붙여놓으면서 가게 일을 시작했다.
“이제는 물건을 대주는 사람도 없어요. 물건을 주문해도 이런 곳은 가져다주지도 않아요. 그나마 우리집에 물건을 가져다 주는 사람도 80살 먹은 할머니에요. 리어카에다가 물건 싣고 다니면서 바나나 우유 몇 개, 요쿠르트 몇 개 갖다줘요. 그 사람도 젊었을 때는 충장로에서 장사 꽤 잘했다고 들었어요.”
손님들은 거의가 동네 사람들이다. 물건 한 두 가지 사는 사람들은 멀리 마트까지 걸어나갈 필요없이 소망슈퍼에서 해결한다. 종종 외상을 하고 가는 이들도 있다.
과자와 음료수, 물, 껌까지 몇가지 물건을 구입하는데 계산이 금방이다. 80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암산 실력이 상당하다. 마음만 먹으면 내일 당장이라도 문을 닫을 수 있다고 말하는 주인할머니는 그래도 일 없이 놀고만 있는 게 싫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주민들을 위한 구멍가게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 기자 cho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