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추억의 박물관 ‘구멍가게’ 우리 곁에 온기로 머물러주길…
2023년 12월 18일(월) 18:45 가가
<특집> 구멍가게가 사라진다
생필품 파는 잡화상 넘어 서민들 ‘마을공동체’…도시는 편의점이 자리
박혜진·심우장 ‘구멍가게 이야기’, 정근표 ‘구멍가게’ 등 책으로 만나
노여운 작가 ‘골목길 연작’·이미경 작가 전국의 ‘오래된 가게’ 화폭에
생필품 파는 잡화상 넘어 서민들 ‘마을공동체’…도시는 편의점이 자리
박혜진·심우장 ‘구멍가게 이야기’, 정근표 ‘구멍가게’ 등 책으로 만나
노여운 작가 ‘골목길 연작’·이미경 작가 전국의 ‘오래된 가게’ 화폭에


노여운 작가는 지난해 7~11월 영암 군립 하정웅미술관에서 영암의 오래된 가게와 건물을 화폭에 담은 ‘영암산책’전을 열었다. 영암도서관 앞 삼거리에 위치한 ‘삼성슈퍼’를 형상화한 작품 ‘흘러가다’.
‘조그맣게 물건을 차려놓고 파는 집’. ‘구멍가게’의 사전적 의미는 피상적이다. 서민들의 일상생활과 마을공동체 중심에 있었던 구멍가게는 단순히 생필품을 파는 잡화상을 넘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이었다. 이제 시대변화에 따라 구멍가게는 우리 주위에서 급속도로 사라지는 반면 ‘도시의 구멍가게’ 격인 편의점이 24시간 불을 밝힌다. 여전히 마을주민들과 함께 살아 숨 쉬는 함평 ‘향교수퍼’와 장성 ‘명진슈퍼’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힘들게 살던 시절, 서민들과 함께 한 ‘구멍가게’
“돌이켜보면 구멍가게는 어린 우리의 일상에서도 아주 중요한 장소였던 것 같다. 동전 두 개로 비상연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세상의 신문물을 향유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였으며, 학교의 교과과정을 함께 준비하는 교육 보조기관이기도 했으니 말이다.”(박혜진·심우장 지음, ‘구멍가게 이야기’중)
“나에겐 문화유적이요 박물관이자 백화점이었는데 어른들의 놀이터요 사랑방이 세월의 몹쓸 약을 먹고 이젠 지쳐 주인마저 보이지 않는다.”(김규환 지음, ‘잃어버린 고향풍경1’중)
누구나 어린 시절 구멍가게와 얽힌 추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동네와 마을마다 자리했던 구멍가게는 단순히 생필품을 파는 가게에 그치지 않고 서민들의 일상과 마을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데 요즘 우리 주위에서 골목상권의 대명사인 구멍가게가 빠른 속도로 문을 닫으며 사라지고 있다. 대형마트와 24시간 편의점, 인터넷 상거래 등 유통산업구조 변화라는 ‘쓰나미’에 휩쓸려버린 때문이다. 주거방식이 단독주택에서 고층 아파트로 바뀐 것처럼 유통 역시 동네 구멍가게 보다 슈퍼마켓, 대형 마트를 선호하게 된 것이다. 또 ‘도시의 구멍가게’라 할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이 도시 곳곳에 들어섰다. ‘저렴한 가격’과 ‘편의성’을 좇는 우리는 어쩌면 ‘오래된 것’의 소중한 가치마저 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구멍가게’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2021년 출간된 ‘구멍가게 이야기’(책과함께)는 두 저자(박혜진·심우장)가 발로 쓴 ‘구멍가게 답사 보고서’이다. 저자들은 ‘구멍가게’라는 용어가 대략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부터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하며, 어원에 대한 유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한국전쟁기 혹은 그 직후에 작은 규모의 생필품 가게가 여기저기 생겼는데 대개 방이 딸린 한쪽에 물건을 진열해놓고 파는 구조였다. 주인은 방문 한쪽에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수시로 밖을 내다보면서 손님이 오는지 확인했으며 여기에서 ‘구멍가게’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설에는 강도를 막기 위해 창문 사이에 작은 구멍을 내고 물건을 판매한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출입구가 구멍처럼 작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두 저자는 ‘구멍가게 태동기’(1950년대)→‘구멍가게의 도약기’(1960년대)→‘구멍가게의 전성기’(1970~1980년대)→‘구멍가게의 쇠락기’(1990년대 중반 이후~)로 구분한다. 1960~70년대 농촌출신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은 ‘조그마나마 구멍가게라도 낼 수 있었으면’하는 것이었다.
구멍가게들은 ‘OO상회’와 같은 상호를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 ‘슈퍼’가 많이 쓰이면서 구멍가게를 지칭하는 또 다른 명칭으로 자리매김했다. 구멍가게는 ‘생활밀착형 가게’였고, 마을 우체국과 은행, 정류장, 서민술집, 놀이터, 쉼터,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네 멀티플렉스’였다.
대형 슈퍼마켓이 등장하면서 부터 구멍가게 상권(商圈)에 위기가 닥쳤다. 1964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남슈퍼’가 서울 한남동에 개장한데 이어 1968년 내국인을 위한 ‘뉴서울슈퍼마켓’이 중림동에 문을 열었다. 이어 1989년에 ‘서양식 구멍가게’인 편의점이 첫 선을 보였는데 4년여 만에 1000개 점포에 육박할 정도로 소매유통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1993년 7월에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유통업체의 국내 진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정근표 작가는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구멍가게』(2003년·삼진기획)에서 “구멍가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우리 가족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함께 했던 구멍가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의 참뜻을 깨닫곤 한다.”
◇노점에서 구멍가게, 슈퍼마켓, 마트로 변화
예술가들은 구멍가게와 골목길, 동네이발소 등 재개발과 도시화에 따른 ‘사라지는 공간’의 가치에 주목했다.
노여운 작가는 지난 2010년 이후 소멸해가는 도시 동네의 모습을 ‘골목길 연작’으로 캔버스 화면에 담아오고 있다. 쇠락해가는 구도심속 골목길을 직접 두발로 걸어다니며 관찰해 공간의 특색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녹여낸다.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 축적된 평범한 골목길과 낡은 가게, 마을이 그의 붓끝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는 “골목길은 오랫동안 간직한 물건과 같다”고 말한다. 지난 2022년 ‘영암산책’전에서 삼성슈퍼 등 주민들이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공간을 새롭게 선보였다. 또한 지난 11월 한 달간 영암 군립 하정웅미술관에서 영암 주민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드로잉 일상을 그리다’라는 제목의 무료 드로잉 강좌를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사진가이자 전시기획자인 김지연 작가(전주 ‘서학동 사진미술관’ 관장)는 정미소를 비롯해 구멍가게, 이발소 등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앵글을 맞췄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카메라에 포착해온 작가의 바람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 이상 ‘근대화상회’는 지친 삶터의 동반자가 되지 못하고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하루에 몇 차례 다니는 텅 빈 버스 정류장에서 아직도 버스표를 팔고 있는 시골풍경은 너무도 쓸쓸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안쓰럽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역사 속에서 아주 작고 고달팠지만 서민생활의 구구절절한 삶의 중심에 있었던 ‘근대화상회’를 이야기할 시간은 필요하다.”
◇구멍가게가 품고 있는 시간의 나이테
이미경 작가는 20년 넘게 전국의 오래된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펜화로 화폭에 담고 있다. 지난 2017년 펴낸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남해의 봄날) 에필로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게 배운 것들’을 통해 이렇게 강조한다.
“관음리 가게를 시작으로 그동안 그려 왔던 구멍가게 작업들은 잊고 있던 지난날의 그리움, 고향생각, 동심, 정겨운 이야기 등 향수를 품게 한다. 그러나 점점 사라지는 구멍가게를 단지 추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오늘도 우리 가까이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2020년)에서 사라져가는 ‘구멍가게’와의 공존에 대한 화두(話頭)를 던진다. 구멍가게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나이테와 사회문화적 의미까지 결코 소멸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의 ‘로컬의 미래’를 읽으며 작은 구멍가게가 단순히 옛 기억을 떠올리는 추억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적인 꿈일지라도 한번 꿈꿔 보려고 합니다. 구멍가게 그림들이 단순히 기록과 보관의 의미를 넘어 어떻게 하면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고 함께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
“돌이켜보면 구멍가게는 어린 우리의 일상에서도 아주 중요한 장소였던 것 같다. 동전 두 개로 비상연락을 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세상의 신문물을 향유하며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였으며, 학교의 교과과정을 함께 준비하는 교육 보조기관이기도 했으니 말이다.”(박혜진·심우장 지음, ‘구멍가게 이야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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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기 혹은 그 직후에 작은 규모의 생필품 가게가 여기저기 생겼는데 대개 방이 딸린 한쪽에 물건을 진열해놓고 파는 구조였다. 주인은 방문 한쪽에 조그만 구멍을 만들어 수시로 밖을 내다보면서 손님이 오는지 확인했으며 여기에서 ‘구멍가게’라는 말이 생겼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설에는 강도를 막기 위해 창문 사이에 작은 구멍을 내고 물건을 판매한 데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출입구가 구멍처럼 작아서 그런 이름이 생겼다고도 한다.”
두 저자는 ‘구멍가게 태동기’(1950년대)→‘구멍가게의 도약기’(1960년대)→‘구멍가게의 전성기’(1970~1980년대)→‘구멍가게의 쇠락기’(1990년대 중반 이후~)로 구분한다. 1960~70년대 농촌출신 노동자들의 소박한 꿈은 ‘조그마나마 구멍가게라도 낼 수 있었으면’하는 것이었다.
구멍가게들은 ‘OO상회’와 같은 상호를 주로 사용했다. 그런데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 ‘슈퍼’가 많이 쓰이면서 구멍가게를 지칭하는 또 다른 명칭으로 자리매김했다. 구멍가게는 ‘생활밀착형 가게’였고, 마을 우체국과 은행, 정류장, 서민술집, 놀이터, 쉼터,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동네 멀티플렉스’였다.
대형 슈퍼마켓이 등장하면서 부터 구멍가게 상권(商圈)에 위기가 닥쳤다. 1964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남슈퍼’가 서울 한남동에 개장한데 이어 1968년 내국인을 위한 ‘뉴서울슈퍼마켓’이 중림동에 문을 열었다. 이어 1989년에 ‘서양식 구멍가게’인 편의점이 첫 선을 보였는데 4년여 만에 1000개 점포에 육박할 정도로 소매유통 업계에 돌풍을 일으켰다. 1993년 7월에 유통시장이 개방되면서 외국 유통업체의 국내 진출에 가속도가 붙었다.
정근표 작가는 자전적 스토리를 담은 『구멍가게』(2003년·삼진기획)에서 “구멍가게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행복을 파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우리 가족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절을 함께 했던 구멍가게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힘든 일이 있을 때, 우리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행복의 참뜻을 깨닫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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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7’(감독 장준환) 촬영지로 여행자들에게 인기를 끄는 목포시 서산동 ‘연희네 슈퍼’. <목포시 제공> |
예술가들은 구멍가게와 골목길, 동네이발소 등 재개발과 도시화에 따른 ‘사라지는 공간’의 가치에 주목했다.
노여운 작가는 지난 2010년 이후 소멸해가는 도시 동네의 모습을 ‘골목길 연작’으로 캔버스 화면에 담아오고 있다. 쇠락해가는 구도심속 골목길을 직접 두발로 걸어다니며 관찰해 공간의 특색을 자신만의 시선으로 녹여낸다.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 축적된 평범한 골목길과 낡은 가게, 마을이 그의 붓끝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작가는 “골목길은 오랫동안 간직한 물건과 같다”고 말한다. 지난 2022년 ‘영암산책’전에서 삼성슈퍼 등 주민들이 무심히 지나쳤던 일상의 공간을 새롭게 선보였다. 또한 지난 11월 한 달간 영암 군립 하정웅미술관에서 영암 주민과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드로잉 일상을 그리다’라는 제목의 무료 드로잉 강좌를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사진가이자 전시기획자인 김지연 작가(전주 ‘서학동 사진미술관’ 관장)는 정미소를 비롯해 구멍가게, 이발소 등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것들에 앵글을 맞췄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카메라에 포착해온 작가의 바람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 이상 ‘근대화상회’는 지친 삶터의 동반자가 되지 못하고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하루에 몇 차례 다니는 텅 빈 버스 정류장에서 아직도 버스표를 팔고 있는 시골풍경은 너무도 쓸쓸하여 향수를 불러일으키기에도 안쓰럽다. 그러나 근현대사의 역사 속에서 아주 작고 고달팠지만 서민생활의 구구절절한 삶의 중심에 있었던 ‘근대화상회’를 이야기할 시간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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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작가는 20년 넘게 전국의 오래된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펜화로 화폭에 담고 있다. 지난 2017년 펴낸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남해의 봄날) 에필로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게 배운 것들’을 통해 이렇게 강조한다.
“관음리 가게를 시작으로 그동안 그려 왔던 구멍가게 작업들은 잊고 있던 지난날의 그리움, 고향생각, 동심, 정겨운 이야기 등 향수를 품게 한다. 그러나 점점 사라지는 구멍가게를 단지 추억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았으면 한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오늘도 우리 가까이 있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아닐까, 주위를 둘러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리고 작가는 한발 더 나아가 ‘구멍가게, 오늘도 문 열었습니다’(2020년)에서 사라져가는 ‘구멍가게’와의 공존에 대한 화두(話頭)를 던진다. 구멍가게가 가지고 있는 시간의 나이테와 사회문화적 의미까지 결코 소멸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지 호지의 ‘로컬의 미래’를 읽으며 작은 구멍가게가 단순히 옛 기억을 떠올리는 추억의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우리 곁에서 오래도록 함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상적인 꿈일지라도 한번 꿈꿔 보려고 합니다. 구멍가게 그림들이 단순히 기록과 보관의 의미를 넘어 어떻게 하면 시대와 문화를 아우르고 함께 공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던져봅니다.”
/송기동 기자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