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장 정선엽 - 송기동 예향부장
2023년 12월 12일(화) 00:00
“내 눈 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개봉 20일 만에 관객 7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서울의 봄’에서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정우성 역)은 전세가 반란군 쪽으로 기울었지만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한다. 실제로 1979년 12·12 당일 수도경비사령관(장태완)과 특전사령관(정병주), 육군 헌병감(김진기)만이 고립무원(孤立無援)으로 반란군의 대척점에 서있을 뿐이었다.

12·12는 당초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 수장인 전두환이 자신을 한직으로 보내려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우발적으로 쿠데타를 일으킨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훗날 연구에 따르면 10·26 이후 전두환과 하나회는 정권 찬탈에 이르는 쿠데타를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를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는 12·12반란→전두환 중앙정보부 부장서리 취임(1980년 4월)→5·17조치(전국으로 계엄 확대)→5·18 살육→최규하 대통령 퇴임(8월 16일)·전두환 대통령 선임(8월 27일)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쿠데타’로 규정했다.

영화에서는 한 컷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하는 사병이 있다. 영암 출신인 고(故) 정선엽(1956~1979) 병장이다. 광주 동신고를 졸업하고 조선대 전자공학과에 재학중 입대했던 그는 12월 13일 새벽 국방부 제50헌병대 소속의 전역을 3개월 앞둔 병장이었다. 국방부 B2 벙커를 후임대신 자원해 지키던 그는 “중대장님의 지시 없이는 절대 총을 줄 수 없다”며 쿠데타에 동원된 공수부대에 저항하다 사살됐다. 신군부는 사후에도 정 병장의 죽음을 ‘계엄군 증가 인원과의 오인에 의한 총기사고’로 은폐·조작하고 순직으로 분류했다.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재조사에 따라 역사 속에 묻혀있던 정 병장의 의로운 죽음이 뒤늦게 밝혀졌다. 국방부는 12·12 이후 43년 만인 지난해 12월 유족에게 ‘전사 확인서’를 전달했다.

12·12 44주년을 맞은 오늘, 23살 젊은 나이에 반란군에 맞서 끝까지 항전했던 참군인, 정 병장의 의로운 죽음을 기억하고 그의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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