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과 ‘목포의 눈물’- 김승일 조선대 명예교수
2023년 12월 08일(금) 00:00 가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에 무슨 음악을 좋아 하느냐 물으니 노래 제목을 댄다. 왜 하필이면 그 노래냐 다시 물으니 가사의 어느 대목이 그렇게 가슴을 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혹시 좋아하는 클래식이 있느냐 했더니 모르겠다며 고개를 돌린다.
그 사람은 ‘가사’를 음악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가사는 음악이 아니라 시다. 그래서 가사 있는 음악은 뮤직(Music) 중에서도 따로 ‘노래(Song)’라고 한다. 노래는 인생사 애환을 담고 있지만 그건 가사의 몫이고 순수 기악 음악은 그걸 담지 못한다. 좋은 ‘노래’는 그 가슴 깊은 인생사 애환이 순수 음악의 생명력과 맞아 떨어질 때 더 빛을 발하기도 한다.
어느 시절이던가 야구장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함성으로 울려퍼질 때가 있었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야구장 밤하늘을 찌를 듯 목소리 높여 부르던 목포의 눈물을 들으며 야구장에 웬 뜬금 없는 눈물이냐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왜 하필 ‘목포의 눈물’이었을까.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눈물”
정말 야구장 노래로 뜬금없긴 하다. 부두의 가녀린 새악시가 애타게 님을 그리는 안타까운 노래인데 그게 왜 하필이면 야구장에서 함성으로 터지냐는 것이다.
1980년대 차별과 홀대로 설움받던 호남의 연대감이 야구장에서 노래로 분출된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기야 당시 해태 야구가 호남의 분통을 속시원히 풀어주며 통쾌함을 전달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하필이면 ‘눈물’이냐는 것이다. 흥겨운 ‘진도 아리랑’도 있고, 강강수월래도 있는데 말이다.
거기에 음악의 비밀이 있다. 음악은 첫 음, 첫 동기로 시작되자마자 음악이라는 생명의 싹이 터 오른다. 그 생명은 ‘긴장과 이완’이라는 수많은 굴곡의 드라마를 거치면서 결국 거대한 절정, 클라이맥스로 생명을 완성한다. 그래서 절정과 클라이맥스가 없는 음악은 명곡으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음악은 성장하는 생명체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에너지가 동력의 원천이다. 긴장과 이완의 굴곡을 거쳐 거대한 드라마를 완성해 내고자하는 에너지의 결집 과정, 무언가 분출과 용틀임으로 한바탕 포효를 터트리고야 말 것을 암시하면서 준비·압축해가는 에너지의 결집 과정, 그것이 곧 음악의 생명인 것이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는 그것이 들어 있다. ‘사공의 뱃노래’하며 슬슬 노젓듯 노래는 시작하지만 ‘삼학도 파도 깊이’에서 한바탕 용암이 분출하듯 에너지의 절정을 노래하더니 ‘이별의 눈물이냐’하고 한번 더 한을 토해내고 결국은 이완의 종점에 이른다.
엎치락 뒤치락 야구의 스코어는 ‘긴장과 이완’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7회말, 8회말이 되고 9회말이 되면서 ‘목포의 눈물’은 터지고야 만다. 이때 목포의 눈물은 ‘눈물’이 아니라 ‘절정’ 그 자체이고, 9회말 홈런은 그렇게 절정의 맛이 되고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이 된다.
이것이 곧 음악의 생명이고 음악의 드라마이며, 우리 인생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어느 시절이던가 야구장에서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이 함성으로 울려퍼질 때가 있었다. 요즘도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야구장 밤하늘을 찌를 듯 목소리 높여 부르던 목포의 눈물을 들으며 야구장에 웬 뜬금 없는 눈물이냐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왜 하필 ‘목포의 눈물’이었을까.
1980년대 차별과 홀대로 설움받던 호남의 연대감이 야구장에서 노래로 분출된 것이 아닌가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기야 당시 해태 야구가 호남의 분통을 속시원히 풀어주며 통쾌함을 전달하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하필이면 ‘눈물’이냐는 것이다. 흥겨운 ‘진도 아리랑’도 있고, 강강수월래도 있는데 말이다.
거기에 음악의 비밀이 있다. 음악은 첫 음, 첫 동기로 시작되자마자 음악이라는 생명의 싹이 터 오른다. 그 생명은 ‘긴장과 이완’이라는 수많은 굴곡의 드라마를 거치면서 결국 거대한 절정, 클라이맥스로 생명을 완성한다. 그래서 절정과 클라이맥스가 없는 음악은 명곡으로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음악은 성장하는 생명체다. 그리고 그 생명력은 에너지가 동력의 원천이다. 긴장과 이완의 굴곡을 거쳐 거대한 드라마를 완성해 내고자하는 에너지의 결집 과정, 무언가 분출과 용틀임으로 한바탕 포효를 터트리고야 말 것을 암시하면서 준비·압축해가는 에너지의 결집 과정, 그것이 곧 음악의 생명인 것이다.
이난영의 ‘목포의 눈물’에는 그것이 들어 있다. ‘사공의 뱃노래’하며 슬슬 노젓듯 노래는 시작하지만 ‘삼학도 파도 깊이’에서 한바탕 용암이 분출하듯 에너지의 절정을 노래하더니 ‘이별의 눈물이냐’하고 한번 더 한을 토해내고 결국은 이완의 종점에 이른다.
엎치락 뒤치락 야구의 스코어는 ‘긴장과 이완’으로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더니 7회말, 8회말이 되고 9회말이 되면서 ‘목포의 눈물’은 터지고야 만다. 이때 목포의 눈물은 ‘눈물’이 아니라 ‘절정’ 그 자체이고, 9회말 홈런은 그렇게 절정의 맛이 되고 한편의 드라마가 완성이 된다.
이것이 곧 음악의 생명이고 음악의 드라마이며, 우리 인생사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