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의 자세 - 윤현석 정치부 부국장
2023년 11월 22일(수) 22:00
아직도 여전히 삼국지의 명장면을 한 번씩 되뇌일 때가 있다. 장판 전투에서 우뚝 선 장비의 일갈, 형주성과 번성에서 패한 관우의 최후, 백제성에서 어린 아들을 제갈량(공명)에게 탁고(託孤)하는 유비 등 주인공의 전성기 또는 마지막 모습을 묘사하는 문장에서는 숨을 참으며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나관중의 각색과 이후 호사가들의 첨삭이 더해지면서 주인공들은 초현실적 인물들로 묘사되는데, 그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단연 제갈량이다.

그는 형주 융중에 은거하면서도 전국의 명망있는 선비, 지략가 사이에서 이미 이름이 높았다. 세 번씩이나 예를 갖춰 찾아온 유비에게 수십 년 후에 일어날 ‘천하삼분지계’를 이야기할 정도로 미래를 내다봤기 때문이다. 합류한 이후에는 탁월한 지략, 뛰어난 정치적 능력에 굳건한 충성심, 공평무사한 인간성까지 갖춰 약소국인 촉나라를 일으켜 한나라 부흥을 꿈꿨다. 글도 잘 썼다. 대표적인 문장으로 출사표(出師表)가 있는데, 위나라를 상대로 북벌에 나서며 후주, 즉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바친 글이다.

당시의 대소 신료들은 물론 후세대들도 이를 읽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제갈량의 진심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출사표는 당나라 한유의 제십이랑문, 진나라 이밀의 진정표와 함께 중국 3대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유비로부터 받은 은혜, 유선에 대한 당부, 인재 추천, 한나라의 멸망이 주는 교훈, 자신에 대한 겸손한 소개, 결심과 소임, 북벌을 위한 준비 과정 등을 담았다. 북벌에 실패하고 오장원에서 병사했지만 그 진정성만은 180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우리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바야흐로 출사의 계절이다.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매주 수십 명의 현직 의원과 그 자리를 노리는 명망가들이 출판기념회를 열어 자신의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얼마나 오랜 준비를 거쳐 지역과 국가를 위한 대계를 내놓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저 한순간 봉투에 담겨 팔려나가는 책이 아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구체적이며, 실천 가능한 이야기로, 자신의 진심을 담아 후일 꼭 다시 꺼내 다짐하고, 반성하며, 일깨울 수 있는 그러한 내용이 한 자 한 자에 박혀 있었으면 한다.

/chadol@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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