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겉절이 - 이중섭 소설가
2023년 11월 16일(목) 22:00 가가
소설을 한 편 쓴 기분이었다. 혼자 배추 겉절이를 담근 후였다. 겉절이를 먹어본 아내가 배추가 덜 절여졌다며 웃었다. 그제야 배추 숨이 덜 죽어 뻣뻣해 보였다. 소설도 스스로 잘못된 부분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걸린다. 유튜브에서 하라는 대로 겉절이를 담갔는데도 그랬다.
아내가 반찬 때문에 힘들어해 뭔가 도움을 주고자 시도했다. 겉절이를 담그는 내 방식은 아주 간단하다. 아내보다 양념 재료를 훨씬 다양하고 많이 넣는 것이다. 쉽게 말해 겉절이가 맛이 없더라도 양념 맛으로 먹도록 하려는 의도다. 아내는 절약하느라 양념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아내가 사용하지 않은 사과, 배, 쪽파, 새우젓을 넣었다. 당연히 붉은 고추, 까나리 액젓, 멸치액젓, 매실청 그리고 쌀밥도 함께 버무렸다.
겉절이가 완성되니 잘못된 부분이 속속 드러났다. 먼저 배추를 조금 길고 엇비슷하게 잘라야 하는데 그냥 짧게 잘라버렸다. 얇은 깍두기 느낌이 났다. 다른 한 가지는 붉은 고추를 믹서기에 갈지 않고 가늘게 썰어 쪽파, 부추와 함께 마지막에 버무렸다. 어릴 때 어머니가 절구통에서 고추를 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때는 고춧가루가 귀해서 그랬을 것으로 생각했다. 믹서기에 다른 재료들과 함께 갈았으면 훨씬 더 배춧속에 잘 스며들었을 터이다. 마치 에피소드가 잘 자리 잡아 소설 속에서 우렁한 울림이 나듯이.
완성된 겉절이의 겉모양은 그럴듯했다. 겉절이가 완성되자 아내의 굼뜬 행동이 바빠졌다. 맨 먼저 자기 친구들 카톡 방에 사진을 올렸다. 그 다음 근처에 사는 지인한테 겉절이를 가져갔다. 배추가 조금 덜 절여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여자들은 그냥 알아. 그래도 당신 대단하다고 다들 칭찬이야.”
왠지 아내 친구들의 남편에게 욕을 먹을 것 같았다. 여전히 아내는 여기저기 전화로 겉절이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 배추를 적당히 절이는 것이 어떤 거야.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아야 하잖아.”
“그건 우리도 잘 몰라.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배추 적당히 잘 절이는 거야.”
다음에 배추 절이는 것을 잘 봐둬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엄청나게 잘했어. 그런데 어떻게 김치를 담글 생각을 했어. 어려운걸.”
“내가 중학교 때부터 비 오는 날 가족 팥죽 담당이었어.”
처음 듣는 새로운 사실에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밀가루 반죽해서 방망이로 얇게 펼친 후 잘게 칼질해 죽을 쒔지. 어머니도 인정한 죽 잘 쑤는 아이였어.”
어린 시절에 비만 오면 밀가루죽을 쒀 먹었다. 어릴 때는 무엇이든지 잘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피곤하네. 겉절이로 막걸리나 한잔하고 자야겠다.”
김치냉장고를 여니 웬걸 겉절이를 담아놓은 작은 통이 여러 개다. 아내가 쑥스럽게 웃었다.
“이건 친구 정이 줄 거고, 그 옆에 거는 친구 숙이 줄 거야. 당신 모르게 줄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호호.”
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겉절이 한 번 담근 것에 이렇게 좋아한 걸 보니 왜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았나 미안했다.
여기저기서 겉절이에 대한 평가를 듣고 나니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붉은 고추를 믹서기에 넣지 않고 고명처럼 예쁘게 보이려 한 것도 그랬다. 시놉시스를 쓰지 않고 장편소설을 쓰다가 곤욕을 치렀듯이 겉절이 담글 때도 준비를 대충 해 놓고 작업을 하니 실수한 것이 많았다. 잘 갖춰놓았더라면 훨씬 더 맛있었을 것이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풀죽을 쓰면 훨씬 음식 맛이 깊었을 텐데 귀찮아서 그냥 밥솥에 밥을 퍼 사용했다. 소설 쓰다가 막히고 지칠 때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써 놓았던 글을 복사해서 붙인 느낌이었다. 뭐 대충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하던 잘못된 습관이 낳은 결과였다. 소설을 쓸 때처럼 조금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명작 소설과 명품 겉절이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올겨울에는 더 맛있는 김장이 만들어질 조짐이 보였다. 게다가 빛나는 소설은 덤으로 따라온다. 건실한 삶 속에서 아름다운 소설이 태어난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
겉절이가 완성되니 잘못된 부분이 속속 드러났다. 먼저 배추를 조금 길고 엇비슷하게 잘라야 하는데 그냥 짧게 잘라버렸다. 얇은 깍두기 느낌이 났다. 다른 한 가지는 붉은 고추를 믹서기에 갈지 않고 가늘게 썰어 쪽파, 부추와 함께 마지막에 버무렸다. 어릴 때 어머니가 절구통에서 고추를 갈던 기억이 떠올랐지만, 그때는 고춧가루가 귀해서 그랬을 것으로 생각했다. 믹서기에 다른 재료들과 함께 갈았으면 훨씬 더 배춧속에 잘 스며들었을 터이다. 마치 에피소드가 잘 자리 잡아 소설 속에서 우렁한 울림이 나듯이.
왠지 아내 친구들의 남편에게 욕을 먹을 것 같았다. 여전히 아내는 여기저기 전화로 겉절이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면 배추를 적당히 절이는 것이 어떤 거야. 다음에는 실수하지 않아야 하잖아.”
“그건 우리도 잘 몰라. 여자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이 배추 적당히 잘 절이는 거야.”
다음에 배추 절이는 것을 잘 봐둬야 할 것 같았다.
“오늘 엄청나게 잘했어. 그런데 어떻게 김치를 담글 생각을 했어. 어려운걸.”
“내가 중학교 때부터 비 오는 날 가족 팥죽 담당이었어.”
처음 듣는 새로운 사실에 아내의 눈이 반짝였다.
“밀가루 반죽해서 방망이로 얇게 펼친 후 잘게 칼질해 죽을 쒔지. 어머니도 인정한 죽 잘 쑤는 아이였어.”
어린 시절에 비만 오면 밀가루죽을 쒀 먹었다. 어릴 때는 무엇이든지 잘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너무 피곤하네. 겉절이로 막걸리나 한잔하고 자야겠다.”
김치냉장고를 여니 웬걸 겉절이를 담아놓은 작은 통이 여러 개다. 아내가 쑥스럽게 웃었다.
“이건 친구 정이 줄 거고, 그 옆에 거는 친구 숙이 줄 거야. 당신 모르게 줄려고 했는데 들켜버렸네, 호호.”
나는 아내를 쳐다보았다. 겉절이 한 번 담근 것에 이렇게 좋아한 걸 보니 왜 진작에 그렇게 하지 않았나 미안했다.
여기저기서 겉절이에 대한 평가를 듣고 나니 조금 더 신경 썼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붉은 고추를 믹서기에 넣지 않고 고명처럼 예쁘게 보이려 한 것도 그랬다. 시놉시스를 쓰지 않고 장편소설을 쓰다가 곤욕을 치렀듯이 겉절이 담글 때도 준비를 대충 해 놓고 작업을 하니 실수한 것이 많았다. 잘 갖춰놓았더라면 훨씬 더 맛있었을 것이 확실했다.
마지막으로 풀죽을 쓰면 훨씬 음식 맛이 깊었을 텐데 귀찮아서 그냥 밥솥에 밥을 퍼 사용했다. 소설 쓰다가 막히고 지칠 때 블로그나 페이스북에 써 놓았던 글을 복사해서 붙인 느낌이었다. 뭐 대충 이렇게 해도 괜찮겠지, 하던 잘못된 습관이 낳은 결과였다. 소설을 쓸 때처럼 조금 집중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명작 소설과 명품 겉절이도 다음 기회로 미룰 수밖에 없다. 올겨울에는 더 맛있는 김장이 만들어질 조짐이 보였다. 게다가 빛나는 소설은 덤으로 따라온다. 건실한 삶 속에서 아름다운 소설이 태어난다는 것을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