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교각살우’가 되지 않도록 - 최은모 광주전남기업협의회장, (주)무진서비스 대표
2023년 11월 15일(수) 00:00
지난 주 광주 자동차 부품업체 근로자가 지게차 사고로 사망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이로 인해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라 해당 부품업체는 조업이 중지됐다. 이 업체를 협력사로 둔 광주 기아차 공장은 연쇄적인 영향으로 부품 수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3일 동안 문을 닫아야 했다. 본 사건과 광주 기아차는 무관했으나, 해당 중소기업의 부품 공급 없이는 자동차 생산 공정이 가동될 수 없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공장의 불이 꺼진 것이다.

다행히 지난 10일 광주시와 관련 당국이 긴급히 심의하여 조업 정지는 해제되었으나, 이미 사흘간 조업을 중단한 기아차는 6300대 분량의 생산 차질이 발생했다고 한다. 반도체와 더불어 매년 광주에 50억불이 넘는 달러를 벌어주는 효자 종목인 자동차 공장이 사흘 동안 가동을 멈추면 최소 수백억 원대의 수출 차질이 발생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사람의 안전 및 보건을 확보하도록 경영 책임자에게 의무를 부과한 법률이다. 산업 현장에서 재해를 방지하기 위해 각 주체에게 알맞은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이를 엄정히 처벌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무조건 처벌만 강화하는 등의 실효성 없는 제도 시행은 적지 않은 부작용을 낳는다. 기업의 경영 활동 위축은 물론 국가적 차원에서의 수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그 취지와 무관하게 우리 기업의 수출에 이와 같은 차질을 빚게 한다면 현장 상황에 맞도록 관련 법령을 보완해 나가야 한다.

연 600억 달러가 넘는 광주전남 지역의 수출을 견인하는 산업은 반도체, 자동차, 백색가전, 석유화학 등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기간 산업들이다. 그 뒤에는 우리 지역 내 소중한 일자리를 창출하는 수만 개의 중소기업들이 1, 2, 3차 협력관계로 이어져 있다.

내년 1월 27일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을 앞두고 있다. 제도의 보완 또는 유예없이 예정대로 시행될 경우 대상 기업은 수십만 개로 확대될 수 있다. 이번 사고는 이 중 한 곳에서만 사고가 발생해도 해당 산업의 불이 꺼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수출 현장에서 바이어와의 비즈니스는 단 하루만이라도 납기에 차질이 생기면 자칫 거래 중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신용 리스크가 된다.

작년에도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난 몇몇 공장에 중대재해처벌법에 의거해 주요 공공기관에서 각각 일곱 번 넘게 찾아오는 일이 있었다. 이때 해당 공장들은 반복적인 조사와 동일한 자료 제출을 요구받고 공장 조업이 중지되는 등 경영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 봄 호남을 찾은 국무총리에게 광주전남기업협의회장 자격으로 이와 같은 업계의 어려움을 전달했다. 이에 대해 행정 당국으로부터 업계의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도록 행정 조치를 보완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

이제 두 살이 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여전히 현장 상황에 맞게 다듬어야 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옛 말대로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인다’라는 교각살우를 범하면 안 될 것이다. 아무쪼록 산업 현장에서 기업이 소중한 노동자의 안전을 철통같이 지켜나가되, 우리 지역의 경제와 일자리를 책임지는 수출 현장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제도의 시행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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