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마저 지역문화를 포기해선 안된다 - 한재섭 광주독립영화관 관장
2023년 11월 09일(목) 00:00 가가
내년 정부 사업에서 ‘지역’이 소멸해버렸다. 문화체육관광부 내년 예산안에 ‘지역 문화’ 관련 예산이 증발했다는 것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소관하는 영화 분야는 지역영화 문화활성화 지원사업 예산 8억 원과 지역영화 기획개발 및 제작지원 사업 예산 4억 원이 전액 삭감됐고 국내외 영화제 예산은 56억 원에서 28억 원으로 50% 이상 깎였다. 겨우 12억 원으로 전국의 모든 지역 영화를 커버하던 예산을 0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같은 국립박물관이라도 서울의 중앙박물관은 58억 원이 증액된 반면 지역에 있는 박물관들은 100억 원이 줄어들었다. 그러니 ‘지역’ 자가 들어간 예산은 모조리 칼질이라는 세간의 공포가 엄살이 아니라는 반증인 셈이다.
정부가 지역을 대하는 태도는 올해 초만 해도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당장 올해 문체부 업무보고에는 ‘문화로 이끄는 지역균형 발전’을 6대 중점 과제로 제시했고 3월에는 ‘문화의 힘으로 지역소멸 막는다’며 이번 정부의 국정 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이행하기 위해 문화 분야 비전을 담은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 전략’으로 뒷받침하기까지 했다.
정부의 이런 국정 기조는 2021년 국토연구원/한국리서치의 ‘지역 불평등 국민 인식조사’ 결과 지역에는 ‘문화·여가 시설’ 불평등이 가장 심하다(45.2%)고 조사되면서 문화·예술 인프라 및 프로그램 접근성, 전문 인력의 격차가 문화 향유 기회의 격차로 연결되고 지역민 정주 만족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지역 소멸의 주범으로 파악됐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말로만 ‘지방시대’라고 해놓고 예산은 삭제해버리는 중앙 정부에 맞서 지방 정부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올해 12회 광주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황의석, 양윤서 감독이 매곡초등학교 학생들과 만든 ‘수상한 교실’은 11회 서울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초등교사 영상모임 참네모(회장 임성열)에서 공동 창작이 필수인 영화를 교육 재료로 삼아 아이들에게 나와 이웃이 함께 꿈꾸는 세상을 키워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창작으로 공동체의 감수성을 익히고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체험을 하고 온갖 영화들이 모이는 영화제에서 나와 다른 세계의 문화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경험은 그대로 지역 문화를 살찌우는 귀중한 밑거름이 된다. 훗날 직업으로 영화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또 한창 논란거리인 아이들의 미디어 문해력을 놓고 기성세대들이 왈가불가할 필요도 없다. 이미 아이들은 현명한 선생님들과 지역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의 지역 영화 예산은 수도권 사람들만 영화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던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단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단비가 내년부터 부산과 대구, 경기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모든 ‘지역’에 내리지 않을 것이라 사방에서 곡소리만 들려온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내년도 최종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지역 예산을 살릴 수 있도록 당의 색깔을 떠나 협력해달라. ‘지역’ 이란 대명사 앞에 당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참에 ‘지역’이란 화두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꿔낼 수도 있다.
더불어 지방 정부는 직접 타격을 받게 될 문화 분야를 간접 지원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달라.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을 365일 상영하는 독립예술영화관과 각 학교 청소년들의 단체 관람 매칭, 도서관 장서 구입비를 지역 서점에서 일괄 구매토록 하는 사업 등 현장에 나와보면 이런 아이디어가 수없이 많다. 지방 정부는 이런 제안들을 부처간, 산하 기관간 경쟁이 아닌 협력적 방식으로 지역문화를 함께 돌본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조율해 주면 된다.
그리고 국회의원과 공무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내년 예산지키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앙의 일방적인 소비처로서 지역이 아닌 지역 문화의 내력 속에서 다른 지역과 교류를 하려는 인식의 전환이다. 지역마저 지역문화를 포기해버리면 자기가 사는 땅을 혐오하는 정신분열증의 삶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지역을 대하는 태도는 올해 초만 해도 정반대의 분위기였다. 당장 올해 문체부 업무보고에는 ‘문화로 이끄는 지역균형 발전’을 6대 중점 과제로 제시했고 3월에는 ‘문화의 힘으로 지역소멸 막는다’며 이번 정부의 국정 목표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이행하기 위해 문화 분야 비전을 담은 ‘지방시대 지역문화정책 추진 전략’으로 뒷받침하기까지 했다.
올해 12회 광주독립영화제에서 처음 상영된 황의석, 양윤서 감독이 매곡초등학교 학생들과 만든 ‘수상한 교실’은 11회 서울국제어린이청소년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두 사람은 초등교사 영상모임 참네모(회장 임성열)에서 공동 창작이 필수인 영화를 교육 재료로 삼아 아이들에게 나와 이웃이 함께 꿈꾸는 세상을 키워주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 창작으로 공동체의 감수성을 익히고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자신의 영화가 상영되는 체험을 하고 온갖 영화들이 모이는 영화제에서 나와 다른 세계의 문화를 고루 섭취할 수 있는 경험은 그대로 지역 문화를 살찌우는 귀중한 밑거름이 된다. 훗날 직업으로 영화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또 한창 논란거리인 아이들의 미디어 문해력을 놓고 기성세대들이 왈가불가할 필요도 없다. 이미 아이들은 현명한 선생님들과 지역 문화를 풍요롭게 만들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부의 지역 영화 예산은 수도권 사람들만 영화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던 문화 격차를 해소하는 단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 단비가 내년부터 부산과 대구, 경기에서 제주까지 전국의 모든 ‘지역’에 내리지 않을 것이라 사방에서 곡소리만 들려온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내년도 최종 예산안이 확정될 때까지 포기하지 말고 지역 예산을 살릴 수 있도록 당의 색깔을 떠나 협력해달라. ‘지역’ 이란 대명사 앞에 당의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이참에 ‘지역’이란 화두로 한국 정치의 패러다임을 바꿔낼 수도 있다.
더불어 지방 정부는 직접 타격을 받게 될 문화 분야를 간접 지원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달라.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들을 365일 상영하는 독립예술영화관과 각 학교 청소년들의 단체 관람 매칭, 도서관 장서 구입비를 지역 서점에서 일괄 구매토록 하는 사업 등 현장에 나와보면 이런 아이디어가 수없이 많다. 지방 정부는 이런 제안들을 부처간, 산하 기관간 경쟁이 아닌 협력적 방식으로 지역문화를 함께 돌본다는 책임감을 갖고 일할 수 있게 조율해 주면 된다.
그리고 국회의원과 공무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내년 예산지키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중앙의 일방적인 소비처로서 지역이 아닌 지역 문화의 내력 속에서 다른 지역과 교류를 하려는 인식의 전환이다. 지역마저 지역문화를 포기해버리면 자기가 사는 땅을 혐오하는 정신분열증의 삶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