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함께 가을을 - 전고필 영암문화관광재단 대표
2023년 11월 01일(수) 23:00
도로를 달리다 보면 문득 조망점 안에 들어오는 풍경이 있다. 황금 들녘의 가장자리에 선 느티나무나 시뻘건 황토밭에 우뚝 솟아있는 소나무 같은 것들. 이런 풍경과 마주하고 싶지만 차의 속도는 그런 내 심사와는 무관하게 벗어나 버린다. 한적한 도로에서는 차를 갓길에 두고 다시 찾아 가지만 통행량이 많은 곳에서는 입맛만 다시고 이내 운전에 몰입할 수밖에 없다.

애석한 일이다. 모든 길은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는데 이제 길의 주도권은 차에게 양도해 버렸다. 도로를 개설하는 일련의 작업도 원래 길을 사용했던 사람들의 생체 리듬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다. 차의 경제적인 속도에 주안점을 두게 되면서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의 기능은 상실해 버리고 점과 점을 찍는 용도로서의 길만 우두커니 남아있다.

참 씁쓸한 풍경이다. 사통팔달의 길이 만들어졌으니 사람간의 내왕이 더욱 빈번할 것 같은데 대체 자동차는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어디로 데려가는지 알 길이 없다. 문득 가을이 되니 교외의 공원이나 꽃 축제를 하는 곳에 사람들이 비교적 많이 모인다.

화순 고인돌공원, 함평 국화축제장, 신안 퍼플섬, 목포 항구축제장 등등에서 즐거운 비명을 지른다. 잔치마당을 열었는데 손님이 없으면 참으로 서글픈 일이 된다. 다행스럽게 호환마마 보다 무섭다는 비도 내리지 않고 조석으로는 서늘하지만 낮이면 뜨거워진 열기가 사람들을 도시에서 교외로 꼬드기는 전조같은 역할을 해 준다. 이것이 차를 부지런히 운전하는 이유인지 싶어진다.

뜨락에서는 농민들의 분주한 일손이 부지깽이까지 울력시키며 고군분투 중인데 축제장에서는 한가하고 느릿한 이들이 가을의 풍성함을 온몸으로 즐기고 있다. 옛날 같았으면 모두 농번기 방학을 갖고 한 몫 거들었을 법한 여린 손자 손녀들은 나와 무관한 일 인양 낄낄대고 뜀박질하며 공원을 질주한다. 그래도 모든 것이 풍요로운 가을이니 너그러워진다.

가을의 태양이 쉬엄쉬엄 흘러가는 월출산 아래에는 기찬랜드가 있다. 여름이면 내내 천연 암반수를 받은 물놀이장으로 6만여 명이 다녀갔던 곳이다. 여름시즌 그냥 물놀이만 하던 이곳에 버스킹이 펼쳐졌었다. 음악공연과 연주, 마술 등이 주를 이루며 입장객들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는데 그 흥취가 대단했었다.

일상의 곁에서 문화가 숨 쉬도록 하는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어려운 것은 정책적 결정이나 예산이 어려운 것이지 판을 벌이면 사람들은 그것을 즐길줄 알고 내것으로 체화하는데 익숙하다. 여지껏 이래왔으니 늘 이래야 한다는 통념을 깨는 것이 문화이고 기획이다. 이런 경험속에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그럼 내년에는 이곳 계곡을 예술이 숨쉬는 계곡으로 가면 어떨까요” 라는 제안을 한다. 바라던 바이다.

기찬랜드가 갑자기 분주해진다. 가을 국화꽃 축제를 준비하는 것이다. 10월말에 개막을 하니 9월말부터 준비에 들어갔다. 물론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봄부터 시작해 여름 뙤약볕에서도 비가림 하우스에서 국화를 무럭무럭 키우고 있었다. 그런 국화들이 각종의 조형물에 얹혀 자리를 잡는 시간이 한달동안이다.

그리고 지난 10월 28일 월출산국화축제(11월 12일까지)의 점등식이 있었다. 여름내 수영했던 공간에는 달빛폭포라는 콘셉트로 전등이 전광석화처럼 빛나고, 영암의 특산인 멜론이나 무화과, 매력한우 등의 조형물이 캐릭터같이 전시되고, 월출산의 구름다리와 천황봉에 걸린 달이 사진 스팟을 만들어 주고, 느릿하게 월출산 언저리에서 한 생애를 살아가는 국립공원 월출산의 깃대종 ‘남생이’가 여기저기 고개를 기웃거리는 진풍경도 연출되어 있다.

물경 1억 송이라고 한다. 구름다리에 이어 터널의 경관이 있고, 용치계곡을 따라가는 산책로가 유유자적하고, 가야금산조기념관에는 국화로 목부작과 석부작을 한 진기한 작품들이 연신 셔터 세례를 받는다.

뜨겁던 여름을 이겨내고 이렇게 선선한 가을에 꽃을 피워내서 찬서리가 몸서리치도록 흩뿌려지는 겨울까지 이어주는 국화의 매력에 흠뻑 빠져 볼 일이다. 여러분은 망점을 나주 세지 지나 영암 신북에 오면 돛대처럼 솟아있는 월출산 기찬랜드에 두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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